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혹시나 했던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변했다. 여야가 올해 국정감사에 착수하면서 공언한 ‘정책국감’ 약속은 첫날부터 여지없이 깨졌다. 국정의 잘잘못을 따지는 국감의 본래 취지를 망각한 채 당리당략에 따라 정쟁을 일삼는 구태가 곳곳에서 되풀이됐다. 그럼에도 네 탓만 하는 여야 지도부의 행태로 볼 때 이러한 구태가 앞으로 더했으면 더했지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은 전날에 이어 둘째 날인 8일에도 파행이 이어졌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황창규 KT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의 증인 채택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야당은 사내 하도급과 정리해고 문제를 따지려면 이들을 국회 증언대에 세워야 한다는 것이고, 여당은 기업인 망신주기는 안 된다고 맞섰다.
꼭 필요한 증인은 불러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이들 대기업 총수들이 꼭 필요한 증인인지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이들이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감을 파행으로 몰고 간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다. 여야는 이견이 있는 증인 채택 문제는 간사회의에 넘겨 논의하고, 국감을 정상적으로 실시해야 마땅했다. 장관을 비롯한 환경부 간부들은 첫날 국감에서 단 한마디 답변도 못하고 무려 12시간이나 여야의 입씨름을 지켜봐야 했다.
하루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한 환경부의 업무 공백과 예산 및 시간 낭비로 허공에 날려버린 기회비용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얼마나 한심하면 여당 의원이 우리나라 고유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외래 생물종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가져온 남미 원산의 뉴트리아만 증인석을 지켰다는 비아냥이 나올까.
국방부에 대한 국방위 국정감사는 여당 의원들의 야당 의원 폄하 문제로 시끄러웠다. 국방부 감사 첫날 새누리당 정미경 송영근 의원이 새정치연합 진성준 김광진 장하나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쟤는 뭐든지 빼딱”, “이들은 운동권, 좌파적 정체성이 주”라는 내용의 쪽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둘째 날 국감이 한때 파행했다. 동료 의원이 발언하는 동안 경청하지는 못할망정 불필요한 행동으로 분란을 일으킬 거라면 차라리 불참하는 게 원활한 국감 운영에 도움이 된다.
의원들이 동료 의원을 존중하기는커녕 깎아내리기 바쁘니 여야 합의로 채택된 증인들마저 국감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이다. “아프다”, “해외 출장 간다”는 등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증언대를 기피하는 증인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해마다 국감 때면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여야는 이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걸핏하면 본질과 동떨어진 문제로 국감을 파행으로 몰고 가 증인들을 헛걸음시키기 일쑤인 여야가 이들의 국감 출석을 강제할 수 있을까. 국감이 국정 감시라는 본래 취지에 충실할 때 이런 유의 부조리들이 바로잡힌다. 국감 바로세우기도 못하면서 혁신 운운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사설] 곁가지에만 매달려선 국감 제몫 하기 어렵다
입력 2014-10-09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