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적인 다툼 경제에 부담 우려
외환위기 이래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존재감이 요즘처럼 버겁게 다가온 적이 없다.
두 측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재계 1, 2위를 다투는 두 라이벌의 한국전력공사 부지매입 경쟁이 사기업의 경제행위를 넘어선 국가 전체 경제 측면에서 봐야 할 중대 사안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몸집이 커진 두 그룹의 행동에 자칫 우리 경제가 볼모로 잡히지 않을까 우려되는 시점까지 와 있다는 것이다.
10조5500억원이라는 거금을 치르기로 한 한전부지 매입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호구딜’이니 ‘통 큰 베팅’이니 하며 우스개로 치부될 정도로 인수·합병사(史)에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만큼 정 회장에게 현대차의 미래 랜드마크 확보가 절실했다는 역설처럼 들린다. 현대차 홍보실은 입찰가 10조5500억원은 정 회장이 결정했으며 “이 땅을 놓치면 랜드마크 건설에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왕자의 난’으로 현대차와 현대, 현대중공업 등으로 발기발기 찢어진 범현대 그룹을 재건해 정주영 선대회장 당시의 영화를 재현하고 삼성에 빼앗긴 재계 서열 1위를 탈환하기 위한 계획에 다름 아닐 것이다.
삼성동에 ICT허브 건설을 꿈꿔 온 삼성그룹은 어떤가. 자사 입찰가의 배 이상을 적어낸 현대차의 베팅에 위안을 삼는다지만 수십 년간 치러온 현대가(家)와의 대결에 비춰보면 패배는 엄연한 패배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생전에 자동차 사업에 진출하지 못한 데 못내 아쉬워했고, 이건희 회장이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삼성자동차 창업이라는 꿈을 이뤘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닥치자 한보그룹을 시작으로 대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졌고 삼성차도 법정관리의 길을 걸어야 했다. 삼성은 DJ정부의 삼성차와 대우전자의 빅딜 강요마저 뿌리쳤다. 대우그룹의 곪아터진 부실도 부실이었을 테지만 당시 기아자동차 인수전에서 현대차에 패한 점이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 것이다. 삼성차 실패의 대가는 2조8000억원 상당의 이 회장 사재출연 등으로 이어졌고 국민경제에도 부담을 줬다.
문제는 두 재벌의 세대를 넘나드는 숙명적인 대결이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인 주주이익 원칙에 부합해 왔느냐는 점이다. 한전부지 인수에 대해 “더러 금액이 너무 과하지 않으냐는 얘기를 들었지만 사기업이나 외국 기업에 돈을 주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오히려 정부로부터 사는 것이어서 (입찰가격을) 결정하는 데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는 정 회장의 발언은 자본주의 원칙과 거리가 먼 상황인식이 아닐 수 없다.
생산적인 혁신으로 세계시장 공략해야
기업이 물건 팔아 번 돈으로 본사 부지에 투자하든, 숙원 사업에 투자하든 상관할 게 뭐냐고 말하면 무책임한 태도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국민들이 투자한 공개기업이다. 두 기업의 외국인 지분은 각각 51.82%, 44.95%로 절반 내외를 차지하고 시가총액 비중이 각각 14.5%, 3.4%로 국내 증시를 들었다 놨다하고 있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삼성전자의 저조한 3분기 영업실적 발표를 시발로 어닝쇼크 도미노 공포가 엄습하고 있는 데다 슈퍼달러를 동반한 엔저 심화로 제2의 외환위기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1997∼98년 외환위기 때는 정부가 금융기관 팔을 비틀어서야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채무 수십조원을 겨우 틀어막을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1000조원이 넘는 가계빚이 쌓여 있어 은행들에 손을 벌릴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제 두 라이벌은 좁아터진 국내에서 소모적인 대결을 접어야 한다. 도요타와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이 헤맨 덕을 볼 호재가 또 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더 이상 스마트폰으로는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10조원대 영업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값싸고 품질 좋은 샤오미폰으로 무장한 중국이 대대적인 공습을 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반격을 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두 라이벌에게 위기타개책은 명확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생산적인 혁신으로 승부를 펼치는 것이다.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
[데스크시각-이동훈] 삼성·현대차 대결 유감
입력 2014-10-09 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