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대북 5·24조치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파와 정치인 개개인에 따라 존치, 완화, 해제 등으로 다양하게 의견이 갈려 그야말로 백가쟁명이다. 5·24조치란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2개월 후 정부가 내놓은 대북 제재다. 우리 국민의 방북 불허, 남북교역 중단,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적 금지,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불허 등이 골자다. 이로 인해 남북 간 교류·협력은 개성공단을 제외하곤 거의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4년5개월이 지난 지금 이 조치가 우리한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북한에 경제적 타격을 안긴 것은 사실이지만 남한 기업의 손해도 적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박근혜정부가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이다. 드레스덴 선언이나 DMZ 평화공원 조성 등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손질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데 우리 스스로 해제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정부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복잡미묘한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5·24조치의 선제적 해제를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해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최근 북한 실세 3인방의 인천 방문을 계기로 즉각적인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통일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새정치연합 심재권 의원은 “남북 고위급 접촉을 앞두고 우호적으로 해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인 김태호 의원도 “박 대통령이 남북관계와 국가 미래를 위해 정면 돌파를 시도해야 한다”며 사실상 해제를 요구했다.
여야를 떠나 정치인이 자신의 정책 구상을 밝히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문제는 국익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5·24조치는 결국 완화, 또는 해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겠지만 그 과정에서 대북 협상 카드로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달 말쯤 성사될 것으로 예상되는 고위급 접촉에서 북이 해제를 요구할 경우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치를 당연히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 흔한 ‘유감표명’이라도 받아내야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는 것은 대북정책에서 우리 스스로 원칙을 저버리는 꼴이다.
정치권은 고위급 접촉 등에서 우리 정부가 더 큰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국감 답변에서 “북에서 고위급이 왔다고 5·24원칙을 재고하지는 않는다”고 한 발언은 믿음직스럽게 들린다. 대북정책에서 원칙을 바탕으로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은 더없이 중요하다.
[사설] 5·24조치 해제 대북 협상카드로 활용해야
입력 2014-10-09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