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보환] 생물자원이 돈이 되는 시대

입력 2014-10-09 02:20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을 겪은 후 불과 반세기만에 국민총생산 2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세계가 놀라워하는 이 사례는 ‘한강의 기적’이란 다른 이름으로 전 세계에 각인돼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화려함 뒤에는 환경파괴라는 어두운 그늘이 있었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지상과제로 인식되던 시절 자연환경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은 매우 낮았다. 당시 개발과 훼손으로 우리나라의 고유 생물종들은 서식처를 잃었고 개체 수가 급속히 줄어들었다. 우리나라에는 약 10만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지금까지 4만1483종이 밝혀졌다. 이 중에서 246종은 조만간 멸종 위험성이 있어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지만 한번 줄어든 생물종을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 세계는 생물종에 대한 자원화와 주권확보를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Tamiflu)는 중국 고유 식물인 스타아니스(StarAnise)를 원료로 하지만 정작 약품은 중국이 아닌 스위스의 한 제약회사가 특허를 내서 개발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애용되는 크리스마스트리는 구상나무인데 그 학명이 ‘Abies koreana’로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다. 하지만 1904년 유럽 학자에 의해 반출돼 서양에서 개량되었고 지금은 재산권을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이 가지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비싼 로열티를 내고 우리 토종식물을 수입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뿐 아니라 청양고추 대파 무 시금치와 같이 우리 식탁에서 흔히 보는 채소마저도 외국회사에 씨앗 사용에 따른 로열티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자연에서의 생물종은 단순히 시각, 청각 등을 통해 심미적 만족감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농식품, 의약, 바이오산업의 중심에서 인간의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최근 전북 무주에 있는 덕유산국립공원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그곳에 적을 두고 있는 멸종위기식물복원센터가 우리나라에서 천여 촉밖에 발견되지 않은 멸종위기1급 광릉요강꽃 종자를 발아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모든 식물이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다시 싹을 틔우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하겠지만 광릉요강꽃은 그게 쉽지 않다. 2012년 식물복원센터가 전국 7개 지역 300여촉의 광릉요강꽃을 조사했는데 22%가 꽃을 피우기는 했으나 열매를 맺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2013년에는 덕유산에서 자생하는 200여촉을 조사했더니 겨우 4촉만이 열매를 맺었었다. 이번에 종자 발아에 성공한 것들이 바로 그때 얻은 열매이다. 광릉요강꽃은 주름진 잎과 요강모양의 특이한 꽃 생김새 덕분에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을 뿐만 아니라 안정제나 신경쇠약 치료제 원료로도 쓰인다.

이번에 성공한 종자발아 기술은 발아율을 높이고 토양이식에 성공해야 하는 단계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대규모 증식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의미가 크다. 뿐만 아니라 풍란이나 한란과 같은 멸종위기에 처한 다른 난과 식물 복원을 위한 서막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때 열강 식물학자들에 의해 고유 생물종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수난을 겪었고 이후 한국전쟁의 폐허와 경제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생물종 자생지가 훼손되었다. 최근에 들어서야 훼손된 자연과 사라져가는 종을 살리기 위한 복원사업이 펼쳐지고 있는데 생물종 보전이 인간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결과이다.

지금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고 있는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2010년 총회 때 채택된 나고야의정서가 뒤늦게 발효된다. 앞으로 특정 국가의 생물 유전자원을 이용하고자 할 때는 원산지 국가에도 적절한 이익 공유를 보장해야 한다. 자연자원이 국가경제로 연결되는 생물 주권시대가 바야흐로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생물의 서식지 보호와 복원에 관심을 높여야 하는 이유이다.

박보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