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오가는 기도와 응답의 과정을 보면 매우 신중하고 치밀한 것에 놀라게 된다. 아들의 기도와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여러 번 반복 응답해 주셨고, 아들도 확인과 다짐을 반복해 가며 그 교감 사이에 지나침이나 빠뜨림이 없도록 애썼다. 특히 ‘겟세마네’에서의 기도에서 아들은 같은 내용으로 기도를 세 번 반복했다.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마 26:44)
그런 후에야 아들은 잠들어 있는 제자들에게로 가셨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 26:46)
칼과 몽치를 가진 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보낸 성전 경비대 병사들이었고, 그들을 안내한 자는 가룟 유다였다. 그는 병사들과 약속한 대로 누가 예수인지 지목해 주려고 나섰다.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이미 그에게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 그냥 랍비일 뿐이었다. 그가 병사들과 짠 군호대로 선생에게 ‘배반의 키스’를 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병사들이 달려들어 예수를 잡을 때 베드로가 칼을 빼 한 병사의 귀를 베었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마 26:52∼54)
그리고 병사들을 둘러보며 말씀하셨다.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왔느냐.”(마 26:55)
그는 세상에 온 하나님의 ‘말씀’이고 곧 ‘진리’였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할 때 도마가 어디로 가시느냐고 묻자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성전 경비대는 ‘진리’를 체포하기 위해 칼과 몽치를 가지고 온 것이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가 칼과 몽치로 진리를 체포했고, 수많은 권력들이 진리를 침 뱉고 조롱하고 때렸으며, 군중이 진리를 죽이라고 외치면 왕들은 진리의 처형을 명령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체포되자 제자들은 다 도망쳤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마 26:56)
그러나 그분이 끌려갈 때 가야바의 집까지 뒤따라간 제자가 셋 있었다. 그 하나는 예수가 궁지에 몰려 투사로 변신하는지 보고 싶었던 가룟 유다였고, 또 하나는 혹시 그분이 왕권을 선포하려는가 기대한 요한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그분을 지키고 싶었던 베드로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바깥 뜰 모닥불 앞에서 신분이 노출될 것을 꺼려 그를 모른다고 부인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 26:75)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공회가 예수를 신성모독죄로 걸어 죽이기로 결의하고 빌라도 총독에게 보내자 가룟 유다도 그곳을 떠났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 27:5)
그러나 요한은 혹시나 하는 기대로 집요하게 사태의 추이를 주목하고 있었다. 공회와 군중이 예수를 끌고 와서 그가 자칭 왕이라고 하였다 하나 빌라도 총독은 죄가 없는 그를 처벌하는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눅 23:4)
그는 예수가 갈릴리 출신이라 하므로 이는 갈릴리 분봉왕의 관할이라 하여 마침 예루살렘에 와 있던 헤롯 안디바에게 보냈다. 그러나 헤롯 안디바는 그가 아무 이적도 행하지 않으므로 다시 빌라도에게 보낸다. 빌라도 총독이 다시 예수께 네가 왕이냐고 묻자 그분이 대답했다.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요 18:37)
그러자 총독이 어렵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
빌라도 총독은 그를 처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그를 놓아 주면 황제의 충신이 아니라고 위협하자 어쩔 수 없이 처형을 명령한다. 빌라도 총독은 물을 가져오라 하여 손을 씻으며 말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 27:24)
그러자 군중이 다 소리치며 대답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 27:25)
처형 판결이 내려지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관정 안으로 끌고 가서 옷을 벗기고 채찍질을 한 후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게 하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희롱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마침내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인 ‘골고다(해골의 곳)’ 언덕으로 향한다.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마 27:31)
이때 ‘사람의 아들’로 오신 그분의 나이는 서른세 살쯤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서른세 살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라고 말한다.
영국의 프렌즈 리유나이티드 사이트가 4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언제였느냐고 물었다. 그 결과 응답자의 70%가 서른세 살 무렵이 가장 행복했다고 대답했다(타임지 2012년 3월 29일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은 이 십자가의 행렬과 언제쯤 만났을까. 로마 교회는 그분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비아 돌로로사(슬픔의 길)’에 14처의 뜻 깊은 장소를 정해 놓았는데 그 첫 번째가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던 곳, 두 번째는 채찍에 맞던 곳이며, 세 번째가 처음 넘어지신 곳, 그리고 네 번째는 십자가를 진 예수께서 그 모친 ‘마리아를 만난 곳’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모친과 동생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은 잡히신 예수께서 끌려 다니며 재판을 받으시는 도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도 동생들은 피신해야 했고, 모친만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아들을 보려고 달려 나왔을 것이다. 그분이 계속 힘들어하므로 로마 병사는 한 사람을 불러 그를 돕게 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막 15:21)
그리고 ‘제8처’에서 예수께서는 자신 때문에 큰 무리의 여자들이 울며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22)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입력 2014-10-10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