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인사이드] 朴 대통령 연설·기념사 등 메시지 어떻게 만들어지나

입력 2014-10-08 02:01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정치권 일각의 개헌 논의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경제 블랙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개헌 논의가 실제로 본격화될 경우 경제 이슈 등 다른 국정과제를 소용돌이처럼 빨아들이는 이슈라는 점에서 블랙홀에 비유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7일 “반대 이유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현안을 언급할 때 정곡을 찌르는 이른바 ‘돌직구’ 화법을 주로 구사하지만 올 들어선 비유화법도 늘었다. 지난 2월 각 부처 업무보고 당시 박 대통령은 ‘진돗개 정신’을 강조했다. “한번 물면 살점이 뜯겨나갈 때까지 놓지 말라. 잊지 말라고 일부러 하는 얘기”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의 모두발언 중 주요 내용은 본인이 직접 가다듬고 마무리한다. 청와대 부속실과 연설기록비서관실 등의 초안을 토대로 하되 핵심 메시지는 마지막까지 수정을 거듭한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실제 발언이 있기까지 청와대 핵심 참모들도 이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메시지는 국가 정책의 결정체이자 통치행위다. 따라서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추는 드레스코드처럼 타이밍과 수위 조절이 관건이다. 대통령의 국정 구상도 반영돼야 한다. 신년 기자회견, 3·1절 기념사, 8·15광복절 기념사 등 대통령의 중요 연설은 수개월 전부터 준비된다. 관련 부처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 등이 내용을 취합하고, 수차례 회의를 거쳐 확정된 초안을 대통령에게 올리는 식이다.

박 대통령은 주요 연설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 의견을 구하거나 직접 수정한다. 두 달 전 8·15경축사에서 북한과의 환경·문화·민생 협력을 강조한 것이나 한·일 양국 간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에 상당 부분을 할애한 것에는 박 대통령 의중이 깊이 반영됐다. 여권 관계자는 “남북 간 현실적 문제와 내년 수교 50주년을 맞는 한·일 관계가 많이 고려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달 박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위안부 문제를 거론한 것은 청와대와 정부가 막판까지 고심했던 분야다. 박 대통령도 위안부란 직접 표현은 쓰지 않되 인권 차원에서 거론하자는 참모들 견해에 동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해외 방문에서 연설할 때는 가급적 방문국과 한국의 인연을 소개하는 표현을 넣는다. 순발력이 뛰어난 박 대통령이지만 간혹 뚝심을 갖고 밀어붙일 때도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 1월 인도를 국빈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협력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면서 “2000년 전 인도 아유타국 공주가 한국에 와 가야 김수로왕과 결혼했다”며 양국 간 오랜 교류 역사를 소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우리 측 경제계 인사가 직전에 인사말을 통해 이 얘기를 먼저 해버렸다. 청와대 참모들은 한때 사색이 됐지만 박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설문을 그대로 읽었다. 그러자 인도 측 인사들은 오히려 한국 측이 두 차례나 양국 간 인연을 강조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대통령의 메시지에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달 뉴욕의 미국 연구기관 대표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의 모두발언 취소 해프닝은 청와대의 메시지 관리 실패 사례로 기록될 듯하다. 박 대통령의 실제 언급 내용을 본 뒤 기사화하는 물리적 시간에 대한 고려 없이 대통령 일정에 맞춰 취재기자들의 이동만을 독촉했던 청와대 참모들의 감각 부족에 따른 웃지 못할 촌극이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