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국가 통치조직과 국민 기본권을 규정한 최고 법령이기 때문에 개정에 신중을 기해야 함은 당연하다.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과 국민투표를 거치도록 한 것은 함부로 손대지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명백히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치하는 것은 개정 권한을 가진 대통령과 국회의 직무유기다. 1987년 마지막으로 개정된 우리 헌법이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데는 정치권과 전문가, 일반 국민들 사이에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권의 개헌 논의 자체를 봉쇄하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개헌의 대상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보는 듯하다.
개헌은 정치권의 해묵은 과제다. 87년 당시 여야는 대통령 직선제를 부활시키면서 장기집권을 막는다는 생각에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도입했다. 김영삼 김대중씨의 ‘권력 나눠먹기 구상’이 반영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때의 특수한 시대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기형임에 분명하다. 거기다 대통령한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돼 여야의 극한 대립과 국론 분열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진작 개헌을 했어야 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 차원에서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자 “국회가 경제 살리기에 주력해야 하는데 개헌 논의 등 다른 곳으로 국가 역량을 분산시킬 경우 또 다른 경제 블랙홀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 때에 이어 두 번째로 개헌 논의 금지령을 발동한 셈이다. 경제가 더없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개헌 논의가 본 궤도에 오르면 권력구조 논쟁으로 나라가 시끄러워질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 회생에 골든타임이 있는 것처럼 개헌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지금은 모처럼 찾아온 개헌 논의의 적기다. 대선을 멀리 남겨놓았기 때문에 정략에 얽매이지 않고 여론을 모을 수 있는 시기다. 국회의원 과반수인 152명이 ‘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에 가입해 있고, 내년 상반기까지 독자적인 개헌안을 만든다는 데 의견이 모아진 상태여서 논의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 옳다.
우리의 국력과 국민의식 수준에 비춰볼 때 개헌 논의를 한다고 해서 경제나 민생이 소홀해진다는 대통령의 생각은 기우다. 경제를 핑계대면 개헌은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월권이다. 개헌 발의권은 대통령한테만 있는 게 아니라 국회에도 있음을 모를 리 없겠기에 하는 소리다.
[사설] 개헌 논의조차 못하게 할 것 있나
입력 2014-10-08 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