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서른 넘어 배운 걸음마

입력 2014-10-08 02:20

무릎을 다쳤다. 연골판이 찢어진 것이다. 봉합수술 후 6주간 목발을 사용해야 했다. 병원에는 중학생부터 여든이 넘은 분들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수술 전 같은 병실 아주머니들은 아가씨가 무슨 일로 다쳤냐며 안쓰러워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갔고 어느 순간 나는 다른 병실 사람들까지 알게 되었다.

수술 첫날, 저녁부터 목발을 짚고 다니자 아주머니들은 젊으니 바로 목발을 짚네 하면서 칭찬했다. 그랬다. 이곳은 유명한 정형외과로 평균 오십이 넘는 분들이 주로 인공관절 수술을 받는 곳이었다. 내가 받은 수술은, 내게는 대단하고 힘든 것일지 몰라도, 여기서는 대일밴드 두 개를 무릎에 붙이는 정도였다. 이곳에서는 목발이나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비정상처럼 보였다. 3개월째 입원 중인 한 아줌마가 말했다. “아가씨 말이 맞네. 여기는 목발 잘 짚는 사람이 최고지.” 그 말을 증명하듯 같은 날 수술을 받은 20대 대학생이 목발을 짚고 바람처럼 지나갔다. 일제히 모든 사람이 감탄하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6주를 목발과 함께 생활하는 일이란,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을 할 수 없게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고 대중목욕탕에 갈 수 없었다. 계단이 높게 늘어선 건물 앞에서 저기를 꼭 가야 할까 되뇌었고 육중한 문을 열지 못해 몇 번이나 뒤돌아서야 했다. 노트북을 들고 걸을 수 없어서 거실에서 방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 길 가던 사람이 편의점 문 앞에서 낑낑대는 내게 문을 열어주었고 먼저 와 택시를 기다리던 사람이 순서를 양보했다.

그럼에도 바깥세상의 계단은 견고했다. 넓은 평지에서도 계단 하나 때문에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넘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는 손이 계단을 만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목발을 제거하던 날, 이번에도 같은 병실 아주머니들은 잘 걷는다고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잘 걷는 일. 당연하게 여기던 그 일을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여든 넘은 할아버지가 매일 자전거 페달을 돌리고 중학생인 축구부 소년이 근력운동을 한다. 나는 서른 넘어 걸음마를 배운다. 버스를 조금 빨리 타겠다고 뛰던 두 다리는 요즘 누구도 앞지르지 않고 천천히 걷는다.

곽효정(매거진 ‘오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