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종걸] 공동체 복원을 위하여

입력 2014-10-08 02:20

지난 3일 개천절 경축사에서 정홍원 국무총리는 신뢰와 가치 복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청렴, 신뢰, 봉사, 질서의식, 비정상적 관행, 적폐, 부정부패, 사회적 자본 등이 그날 사용된 단어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국무총리가 직접 언급할 정도로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모습은 다양하다. 신뢰가 없어 보여도 어딘가는 존재한다. 누군가는 봉사와 희생을 통해 사회를 유지한다. 침몰하는 세월호 속에서 아이들을 구하다 죽은 선생님들, 은폐되던 윤일병 구타사망 사건의 진실을 밝혔던 시민단체 등 아직 이 사회의 자정기능은 작동된다.

사회인식과 관련된 국제공동연구인 세계가치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국가권력이 제대로 신뢰받지 못하는 곳이다. 한국인의 73%는 국회를, 52%는 공무원을 신뢰하지 않는다. 군대(36%) 경찰(42%) 법원(33%) 등 거의 모든 권력기관에 대한 불신은 싱가포르와 비교해 2∼3배 높다. 그렇다고 애국심이 낮은 것도 아니다. 나라에 대한 자긍심(89%)이 높으며, 위기 시 나라를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83%) 또한 아주 높다. 문제는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는 권력의 모습인 것이다. 가장 신뢰받는 곳은 가족(98%)과 친구(81%)다. 그러나 이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타인에 대한 신뢰도는 급속히 떨어진다. 우리들은 흔히 이러한 사회를 사회적 자본이 약한 사회라고 한다.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트러스트’라는 책 속에서 분석한 이탈리아 남부의 모습과 유사하다.

시급한 일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국가기관의 신뢰회복은 우리의 최대 화두였다. 그러나 그 신뢰는 더욱 떨어졌고 사회는 ‘단식’과 ‘폭식’ 속에 분열돼 갔다. 지금부터도 늦지 않았다. 유능한 정부, 신뢰받는 정부를 제대로 세우고, 이 모든 개혁과정을 알기 쉬운 언어로 국민에게 전달해야 한다. 대통령제 아래서는 대통령이 먼저 고민할 일이다. 그리고 그 성과를 국민에게 보여줘야만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둘째는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이다. 가족과 친구 속에 고립된 신뢰구조를 마을과 지역사회 전체로 확대시켜야 한다. 친절한 이웃, 따뜻한 교회, 편리한 동사무소, 활기찬 골목시장을 복원하는 일이며, 이를 위해 공공과 민간, 영리와 비영리조직이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협동조합을 활용하는 것도 방식이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7원칙’에 빗대어 말한다면 협동조합은 자발적인 조합원들이(제1원칙), 책임 있는 참여(제3원칙과 4원칙)와 민주적 관리(제2원칙)를 통해 발전하는 것이다. 교육과 훈련과정(제5원칙) 속에 능력과 정체성을 확립하며, 협동조합 간 협동(제6원칙),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제7원칙)을 통해 지역의 사회적 자본을 확충한다. 사회적기업도 중요한 수단 중 하나다. 사회문제 해결이 기업의 목적이며 그 과정 가운데 자원봉사, 기부 등 각종 선의의 자원이 결합된다. 이로써 지역복지 담당자로 커갈 수 있으며, 공공영역과 기업활동, 비영리적 속성을 창조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한국사회 모든 구성원이 고민해야 하며 정부의 모든 관련 담당자가 맡아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지자체장과 안행부 장관은 이와 관련된 지역공동체 복원을 위해 책임 있는 계획과 결과를 만들어야 할 최전선에 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개개인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단순한 ‘경제인’이 아니다. 때로는 남들에게 베풀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기도 하는 윤리적 존재이다. 개개인의 사익추구의 정당성을 강조한 애덤 스미스의 가설은 사익을 견제하는 양심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은 양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슴’에 의해서 제대로 작동된다.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는 윤리적 존재로서의 우리에 대한 재인식, 그 개개인의 성찰과 후세대에 대한 계승과정이 바로 공동체 회복의 가장 밑바탕에 있음은 당연하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