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신국원] 스포츠와 연예

입력 2014-10-08 02:13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당시 올림픽에 모인 세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는 실력을 뽐내고 국가의 명예를 높이러 오는 운동선수들입니다. 둘째는 경기에 모인 사람에게 돈을 벌려고 모여드는 상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단순히 구경하러 오는 관중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이 중에서 가장 순수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선수나 장사꾼이 아니라 공평무사의 마음으로 경기를 구경하는 관중이라고 했습니다. 관중의 자세는 올림픽을 비롯한 모든 스포츠의 근본정신이기도 합니다.

스포츠는 예술과 마찬가지로 실용적 목적이 없습니다. 축구공을 아무리 절묘하게 차서 골을 넣더라도 그 자체로는 아무런 실용성이 없습니다. 수많은 관중이 그 기교의 아름다움을 선수와 함께 누리며 즐거워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즉 빼어난 체력과 기술을 익힌 이들이 규칙에 따라 서로 존중하며 승부를 겨루고 이를 보는 이들이 함께 축하하는 것. 이것이 스포츠의 본질입니다.

지난 주말 보름간 열전을 펼쳤던 인천아시안게임이 끝났습니다.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축구와 야구 금메달을 비롯해 많은 명승부들이 크고 작은 감동으로 세월호의 슬픔에 눌린 사람들의 마음을 다소나마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육상, 체조, 수영 등에서는 메달 색깔과 관계없이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큰 감동과 격려가 됐습니다.

하지만 씁쓸함도 남겼습니다. 특히 대회조직위원회가 개막식부터 스포츠의 순수성을 저버려 최악의 국제행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기술적으로 탁월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예산이 적다는 것을 핑계로 댈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창의성과 예술성의 질이 떨어졌다는 비판은 문제가 다릅니다. 스포츠 정신의 훼손은 경기 중 정전이나 성화를 꺼트리는 실수와 달리 게임의 근본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큰 사고 없이 목표했던 종합 2위를 넉넉히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칭찬보다는 비판이 더 많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가장 뼈아픈 것은 ‘한류 홍보를 위한 연예행사 같았다’는 지적입니다. 45억 아시아인의 체육축제가 한류스타만 조명 받는 연예 프로그램 같다는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일본과 대만의 외신은 한류 홍보행사였다고 비판했답니다. 올림픽 기간엔 누구도 광고하거나 금전적 보수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제한사항이 있는데 대회본부가 이를 지키지 않은 셈입니다.

더욱이 ‘나눔과 배려, 소통과 화합’을 내세운 대회를 케이팝(K-Pop) 축제처럼 만든 것은 노년과 장년층 취향을 너무 무시한 것 아닌가 합니다. 한류와 케이팝이 과연 한국적 문화인지, 아니면 다국적 거대기업이 만드는 국적불명의 혼종문화인지는 따져봐야 할 일입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은 인종과 종교, 정치적 이념을 넘어 친목과 연합, 우애를 다져야 할 자리입니다. 인류의 축제에 행여 연예계의 손익계산이 개입되는 건 결코 용납해선 안 될 것입니다.

삶은 종교와 경제, 정치, 문화, 체육 등 다양한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얽혀 있지만 또 분명히 구분됩니다. 각 분야의 독립성이 유지되지 않고 경계를 침범할 때 건전한 발전은 저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가 정치를 간섭해도 그렇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문화나 스포츠처럼 순수하고 자유로워야 하는 영역은 경제나 정치 논리로 접근하면 근본이 흔들립니다. 금번 실패를 거울삼아 평창동계올림픽은 세계인을 위한 순수한 스포츠의 제전이 되길 기대합니다.

신국원 교수(총신대 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