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김정은 제1비서 통할까] ‘원칙’의 朴-‘파격’의 金, 남북 큰 통로 여나

입력 2014-10-07 03:47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평가하면서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밝히고 있다. 이동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전격 방문 이후 북측에 ‘진정성 있는 행동’을 거듭 촉구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통해 전달한 ‘따뜻한 인사말’에 대한 화답 성격이다.

박 대통령은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도 이번 방한 시에 언급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집권 이후 ‘원칙’을 줄곧 강조해온 박 대통령과 ‘파격’ 행보를 잇따라 선보이는 김 제1비서. 극명하게 상반되는 면모와 통치스타일의 두 지도자가 이번 기회에 남북관계의 극적 전환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원칙’의 박 대통령, 북측에 행동 변화 주문=북한 권부 최고 실력자 3명의 지난 4일 방남 이후 향후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졌다. 그러나 예측이 불가능한 북한 체제의 특성상 실제 이것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박 대통령도 이런 점을 의식해 향후 남북 고위급 접촉이 단발성 이벤트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고위급 접촉은) 남북대화 정례화를 이뤄 평화통일의 길을 닦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그동안 남북관계는 접촉 후 분위기가 냉각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밝힌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은 간단하면서도 원칙적인 주문이다. 대남 비방·적대행위 중단은 물론 천안함 폭침 등 과거 도발에 대한 사과 등 북측의 가시적인 행동 변화가 전제돼야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행동 여하에 따라 대북 5·24조치 해제 등 우리 정부의 추가 행동도 취해질 것이라는 취지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 모든 대내외 현안의 해법으로 ‘법치와 원칙’을 제시했다. 대북정책도 예외는 아니다. 비선(秘線)을 활용하지 않는 것이나, 지난해 무산된 남북 당국회담의 ‘격’ 논란에서 보듯 정공법만 택해왔다.

◇‘파격행보’ 김 제1비서의 선택은=김 제1비서의 행보는 극단적이다. 유일체제 공고화를 위해선 피의 숙청 등 철권통치로 북한사회를 억압하는가 하면 때로는 주민들과 팔짱을 끼는 대범한 스킨십을 늘리는 등 파격행보도 연이어 선보인다. 시장경제에 거부감이 없으면서도 사상통제는 오히려 강화하고, 당 중심으로 권력체제를 재편하다 장성택 처형 이후엔 선군(先軍)정치로 회귀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아버지와 달리 2012년 부인 이설주를 공개한 것이나 그해 모란봉악단 공연에서 미국의 상징인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은 김 제1비서 특유의 성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김 제1비서의 예측 불가능성은 대외정책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김정은 체제’는 2012년 북·미 2·29합의를 2개월 만에 파기했다. 지난해엔 대남 무력도발 위협을 계속하다 대화 공세로 돌아섰고, 이후엔 비난에 열을 올렸다. 대외적 상황이 어려울 땐 ‘특사 카드’로 돌파구를 모색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향후 북한의 대남정책이 화해·협력 일변도로만 가지는 않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작은 통로’와 ‘오솔길’의 합치점은=박 대통령이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천명한 선제적 남북관계 진전 방안은 이른바 ‘작은 통로’다. 박 대통령은 “(산림·하천 공동관리 등) 작은 통로부터 열어나가자”고 했다. 북측도 비슷한 언급을 했다. 황 총정치국장이 김 제1비서 메시지를 전하며 했던 말도 “이번엔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김 제1비서의 신년사에서도 관계개선 의지는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올해 초부터 통일대박 및 통일준비론 설파에 나섰다. 김 제1비서도 올해 신년사에서 “북남 관계 개선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직접 밝힌 것은 집권 후 처음이고, 최근 3년간 가장 유화적인 언급이다.

일단 남북대화가 향후 급물살을 탈 여건은 충분히 확보됐지만 한계 역시 분명하다. 김 제1비서는 집권 직후 헌법에 ‘핵 보유’를 명문화했다. 지난해엔 당 중앙위에서 ‘핵무력·경제건설 병진 노선’을 공식 채택했다. 그런 만큼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북핵 포기를 전제로 대대적인 경협 및 지원을 한다는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그만큼 이행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