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전격 방문 이후 북측에 ‘진정성 있는 행동’을 거듭 촉구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통해 전달한 ‘따뜻한 인사말’에 대한 화답 성격이다.
박 대통령은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도 이번 방한 시에 언급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집권 이후 ‘원칙’을 줄곧 강조해온 박 대통령과 ‘파격’ 행보를 잇따라 선보이는 김 제1비서. 극명하게 상반되는 면모와 통치스타일의 두 지도자가 이번 기회에 남북관계의 극적 전환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원칙’의 박 대통령, 북측에 행동 변화 주문=북한 권부 최고 실력자 3명의 지난 4일 방남 이후 향후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졌다. 그러나 예측이 불가능한 북한 체제의 특성상 실제 이것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박 대통령도 이런 점을 의식해 향후 남북 고위급 접촉이 단발성 이벤트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고위급 접촉은) 남북대화 정례화를 이뤄 평화통일의 길을 닦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그동안 남북관계는 접촉 후 분위기가 냉각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밝힌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은 간단하면서도 원칙적인 주문이다. 대남 비방·적대행위 중단은 물론 천안함 폭침 등 과거 도발에 대한 사과 등 북측의 가시적인 행동 변화가 전제돼야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행동 여하에 따라 대북 5·24조치 해제 등 우리 정부의 추가 행동도 취해질 것이라는 취지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 모든 대내외 현안의 해법으로 ‘법치와 원칙’을 제시했다. 대북정책도 예외는 아니다. 비선(秘線)을 활용하지 않는 것이나, 지난해 무산된 남북 당국회담의 ‘격’ 논란에서 보듯 정공법만 택해왔다.
◇‘파격행보’ 김 제1비서의 선택은=김 제1비서의 행보는 극단적이다. 유일체제 공고화를 위해선 피의 숙청 등 철권통치로 북한사회를 억압하는가 하면 때로는 주민들과 팔짱을 끼는 대범한 스킨십을 늘리는 등 파격행보도 연이어 선보인다. 시장경제에 거부감이 없으면서도 사상통제는 오히려 강화하고, 당 중심으로 권력체제를 재편하다 장성택 처형 이후엔 선군(先軍)정치로 회귀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아버지와 달리 2012년 부인 이설주를 공개한 것이나 그해 모란봉악단 공연에서 미국의 상징인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은 김 제1비서 특유의 성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김 제1비서의 예측 불가능성은 대외정책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김정은 체제’는 2012년 북·미 2·29합의를 2개월 만에 파기했다. 지난해엔 대남 무력도발 위협을 계속하다 대화 공세로 돌아섰고, 이후엔 비난에 열을 올렸다. 대외적 상황이 어려울 땐 ‘특사 카드’로 돌파구를 모색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향후 북한의 대남정책이 화해·협력 일변도로만 가지는 않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작은 통로’와 ‘오솔길’의 합치점은=박 대통령이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천명한 선제적 남북관계 진전 방안은 이른바 ‘작은 통로’다. 박 대통령은 “(산림·하천 공동관리 등) 작은 통로부터 열어나가자”고 했다. 북측도 비슷한 언급을 했다. 황 총정치국장이 김 제1비서 메시지를 전하며 했던 말도 “이번엔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김 제1비서의 신년사에서도 관계개선 의지는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올해 초부터 통일대박 및 통일준비론 설파에 나섰다. 김 제1비서도 올해 신년사에서 “북남 관계 개선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직접 밝힌 것은 집권 후 처음이고, 최근 3년간 가장 유화적인 언급이다.
일단 남북대화가 향후 급물살을 탈 여건은 충분히 확보됐지만 한계 역시 분명하다. 김 제1비서는 집권 직후 헌법에 ‘핵 보유’를 명문화했다. 지난해엔 당 중앙위에서 ‘핵무력·경제건설 병진 노선’을 공식 채택했다. 그런 만큼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북핵 포기를 전제로 대대적인 경협 및 지원을 한다는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그만큼 이행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박근혜 대통령-김정은 제1비서 통할까] ‘원칙’의 朴-‘파격’의 金, 남북 큰 통로 여나
입력 2014-10-07 0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