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에르메스 장인들에게 배우며 함께 작업… 키아리 등 16명 레지던시 결과물

입력 2014-10-07 02:42
선발 작가 중 한 명인 가브리엘리 키아리가 에르메스가 보유한 기술을 활용해 만든 두 작품 '날실3.1' '날실3.2'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제공
서울 강남구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는 에르메스 재단이 각국의 젊은 작가를 선발해 에르메스 공방에서 장인들과 협업한 결과물을 전시하고 있다. 한국 전시는 프랑스, 일본에 이어 세 번째다.
하얀 실크 위에 빨간 색 물감이 물들어 있다. 작품 이름은 ‘날실3.1’, ‘날실3.2’. 오스트리아 출신의 수채화를 그리는 가브리엘리 키아리(36·여)의 작품이다.

키아리는 기자에게 “이 물감 색의 이름이 뭔지 아세요?”라고 물었다. ‘빨간 색’이라는 당연한 답을 내놨다. 틀렸다. 정답은 ‘에리오닐’.

“에르메스가 보유한 4400여 가지 색깔 중 빨간 색 계열은 600여개나 됩니다. 에리오닐은 600여개의 빨간 색 중 하나이며 구현하는 방법은 에르메스만 알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입구에 있는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지하 1층으로 이전 개관한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첫 전시 ‘컨덴세이션(Condensation)’ 전에 걸렸다. 2010년부터 매년 4명씩 16명을 선발해 에르메스 장인 공방에서 진행한 레지던시의 결과물로 나온 작품 중 하나다. 전시는 지난해 파리의 팔레 드 도쿄, 지난 3월 도쿄의 긴자 메종 에르메스 ‘르 포럼’에 이어 서울의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로 이어진 것이다. .

작가들은 4년 여간 에르메스 공방에서 장인들이 보유한 은과 크리스털, 가죽 공예 기술 등을 배우며 함께 작업했다. 키아리의 작품에도 여러 장인의 기술이 적용됐다. 실크 위에 에리오닐 물감을 번지게 한 뒤 씨실을 뽑아내고 남은 날실 위에 염색되지 않은 날실을 다시 끼워 넣었다. 씨실을 추출한 장인은 프랑스에서도 유일하게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수산나 프릿셔였다.

에르메스 재단의 이번 전시는 기업이 메세나 활동을 얼마나 의미 있게 구현할 수 있는 지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메세나라는 용어는 기원전 1세기 로마제국의 정치가이자 시인으로 예술 창작 활동을 적극 후원했던 가이우스 클리니우스 마에케나스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삼성문화재단은 리움, 호암미술관 등을 통해 국내 미술계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프라다도 재단을 통해 미술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메세나 활동을 경영과 철저히 분리해 작가의 창작 활동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삼성재단은 젊고 유망한 작가들을 육성해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도록 ‘아트 스펙트럼’을 2년에 한번씩 열고 있다. 에르메스는 아티스트 레지던스를 진행하기 전 작가와 계약할 때 작품에 에르메스의 로고나 상징적인 표식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문구를 포함시켰다.

프라다 재단도 비슷하다. 지난 달 광주비엔날레에서 만난 프라다재단 제르마노 첼란트 관장은 “(프라다 창업자의 손녀이자 수석 디자이너인) 미우치아는 회사에서 나온 제품과 재단 활동이 엮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신 젊은 작가들이 재단으로부터 재정은 물론 기술까지 지원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업의 색깔과 철학이 작품에 녹아들어간다. 에르메스 전에선 에리오닐 등 에르메스 만의 색상 외에도 에르메스의 전형적인 인쇄방법인 실크스크린 방식을 통한 프린트 방식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다음달 30일까지.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