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정문 앞에 6일 인근 하숙집 주인들이 ‘우리생존권대책위’라는 생소한 이름을 내걸고 모여들었다. 지난 7월 착공한 이화여대 신축 기숙사가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지난달 16일부터 거리로 나선 것이다. 2016년 2월 완공되는 이 기숙사는 학생 2344명을 수용하게 된다. 대책위 관계자는 “학교가 지역주민과의 공생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 8월에는 금융감독원 건물 앞에서 신용카드 모집인들이 집회를 열었다. 올해 6월 금융 당국이 신용카드 불법 모집 신고포상금을 5배로 늘리면서 영세한 모집인들이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지난해에는 노래방 신곡 리스트에 ‘트로트’가 적다며 트로트 가수들이 노래방 회사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 같은 ‘생계형 집회’가 최근 몇 년 새 폭증했다. 전문가들은 장기화되는 불황,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난립하는 각종 정책, 양보 없는 이기주의 등이 뒤섞인 결과로 분석한다. 우리 사회의 갈등 조정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과거 시민단체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집회’가 일반 시민의 일상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연도별 집회·시위는 2010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2009년 2만8621건 등 3만건 이내에 머물던 게 2010년 5만4212건으로 급증하더니 이후 매년 4만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최근 집회는 소규모·다각화되고 있다. 집회당 평균 참가자 수는 2009년 93명에서 2010년 36명으로 크게 줄었다. 집회 주체도 동네 주민연합이나 개인 자영업자, 영세상인 등 다양하다.
경찰 관계자는 “매년 4만건 이상 열리는 집회 가운데 70% 정도는 이해 당사자들의 생계가 걸린 생계형 집회”라며 “3∼4년 전부터 이 같은 소규모 집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대안’이 없어서다. 대부분 서민층이어서 경제적·정치적 인맥도 부족하고 정부기관에 호소할 마땅한 방법도 없다. 자신의 주장을 공론화할 통로도 부족해 시위나 농성을 발언의 장으로 삼는 것이다. 이런 시위는 대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대방이 존재하기 마련이어서 장기화되기 일쑤고 결국엔 생업을 포기한 채 달려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맘편히장사하고싶은상인모임(맘상모)의 활동은 생계형 집회의 대표적인 사례다. 맘상모는 권리금 분쟁, 임대차 분쟁에 휘말려 쫓겨나게 된 일부 상인들이 건물주를 상대로 시위를 벌이면서 시작됐다. 임차상인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던 이들의 목소리는 각종 집회, 시위, 기자회견 등을 거치며 다듬어져 올 초 정식 시민단체로 발족했다.
생계형 집회나 시위는 해결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조정한 집단민원의 평균 처리기간은 137.5일로 개인 고충민원 처리기간의 7.6배나 됐다. 이렇게 긴 시간을 끌다보니 당장의 생계조차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기 쉬워 시간이 갈수록 격렬해지는 양상을 띤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의 갈등조정 기능부터 시급히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기획] 생계형 집회 건수 폭증… 다변화 사회 증거인가, 먹고살기 힘든 세태 반영인가
입력 2014-10-07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