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북한 실세 대표단의 전격 방문으로 남북관계 해빙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자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과열 분위기를 우려하는 모습이다. 남북관계가 잘 굴러 가다가도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로 멈춰서길 반복한 경험을 숱하게 해왔기 때문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8개월 전인 지난 2월만 해도 1차 남북 고위급 접촉이 성사돼 오랜 기간 꽉 막힌 남북관계가 물꼬를 텄다. 박근혜정부 들어 남북 간 첫 고위급 만남이었고, 2월 말 이산가족 상봉행사도 약속대로 진행됐다. 하지만 북한은 3월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대북전단(삐라) 살포를 문제 삼아 태도를 바꿨다. 동해상으로 방사포를 발사하고 대남 비방·중상을 재개했다. 우리 측의 2차 고위급 접촉 촉구에도 시큰둥했다.
지난해 6월 정부의 남북 장관급 회담 전격 제의 때도 북한이 호응해오면서 기대감이 커졌지만 수석대표의 급(級)과 의제 관련 이견으로 끝내 무산됐다. 북한은 당시 장관급 회담을 당국회담으로 열자고 해 우리 측이 수석대표를 차관급으로 교체하자 회담에 대한 우롱이라고 반발했다. 결국 회담 바로 전날 대표단 파견을 취소했다.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기로 접어들면서 7월 개성공단 실무회담도 탄력을 받지 못하고 결렬됐다.
이명박정부 2년차였던 2009년 8월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북한이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단장으로 하는 특사 조문단을 파견, 남북관계 전환 계기가 마련됐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불과 두 달 뒤인 같은 해 10월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특사 격으로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과 비밀리에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3차 남북정상회담 전망이 나돌았다. 하지만 진전을 이루지 못하다 이듬해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하면서 남북은 한동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었던 노무현정부 시절에도 굴곡이 있었다. 2004년 5월 제15차 남북 장관급 회담 후속 개최에 합의했지만 북한의 김일성 사망 10주기 조문 요청을 정부가 거부했다는 이유 등으로 회담 전날까지 아무런 통보를 하지 않아 결국 무산됐다. 남북은 이후 1년간 대화의 문을 닫았다.
이 같은 과거 경험을 토대로 정부는 이번 2차 남북 고위급 접촉 준비도 차분하게 대응하는 모습이다. 특히 정치권 등에서 5·24 대북 제재조치 해제 문제 등이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서도 신중한 입장이다.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6일 정례브리핑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5·24조치가 해제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제와 관련해서도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나 전면적 생사 확인 등 근본적 문제 제기가 중심이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
“南北해빙 기대했다 실망할라”… 정부 ‘조심조심’
입력 2014-10-07 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