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SNS보다 대화로… ‘화술’ 배우기 붐

입력 2014-10-07 02:57

“고객에게 거절당하는 게 너무 힘들어 책 보고 말하는 법을 공부하려고요.”

지난 5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서점 ‘화술·대인관계’ 코너에서 김모(43·여)씨가 한참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렸다. 김씨는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다 4개월 전부터 생명보험 영업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가시 돋친 고객의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크게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 번도 말솜씨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고객에게 냉대를 받자 겁이 났다”고 말했다. 서가 앞에서 고민을 거듭하던 김씨는 결국 ‘설득의 비법을 알려 준다’는 제목의 책을 품에 안고 계산대로 향했다.

불통(不通)의 시대에 ‘화술’이 팔리고 있다. 식당에서 잠시 침묵이 흐르면 각자 스마트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는 세상이다. 수많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개인과 개인을 거미줄처럼 엮는 디지털시대가 오히려 개인주의를 가속화시키면서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늘고 있다.

2011년 3월 뉴욕타임스의 서평 편집자 파멜라 폴은 칼럼 ‘전화하지 마세요. 저도 전화하지 않을래요’에서 스마트폰 시대의 새로운 소통법을 말했다. SNS, 메신저, 이메일 등 문자 메시지의 홍수 속에서 전화 등 음성 소통이 크게 퇴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자 소통의 홍수 속에서 사람 간 대화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 15년 경력의 한 스피치 강사는 6일 “고시공부에 4년 매달린 학생이 합격 후 ‘말을 못 하겠다’고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며 “공교육부터 취업까지 우리 사회는 도서관에서 하는 ‘눈의 교육’에만 치중하고 음성으로 표출하는 교육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의 한 은행 지점에서 일하는 직장인 권모(30)씨도 서울 종로구의 한 스피치 학원을 찾았다. 오랜 콤플렉스였던 부정확한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자꾸 ‘뭐라고요?’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았어요. 다른 여직원은 발음도 또박또박 잘하고 싹싹해서 사람들이 호감을 갖는다는 생각도 들고…. 이참에 발음도 고치고 사람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화법도 배우고 싶어요.” 권씨는 “초등학교 때 웅변학원을 다닌 이후로 다시 이런 곳을 찾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웃었다.

화술에 대한 욕구는 취업 성공이나 승진 도구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학원 관계자는 “모임 자리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인기인이 되고 싶다거나, 이성을 만나면 말을 더듬는 바람에 학원을 찾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이 학원은 초등학교 반장선거 철이 되면 초등학생 반을 따로 편성하기도 한다.

출판계에서도 화술 서적들이 인기를 끈 지 오래다. 시중에 출판된 화술 관련 서적만 100여 종이 넘는다.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자기계발 부문에는 대화법 책인 ‘잡담이 능력이다’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김은미 교수는 “최근 사회적으로 ‘나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가 많았지만 이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인식 변화가 젊은 층뿐만 아니라 중장년층까지 퍼지고 있다”며 설명했다. 그는 “대화 상대방을 존중·배려하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말만 그럴싸하게 잘하는 ‘화법’만 추구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