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응원단이 못 오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인천아시안게임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선수들이나 대회 관계자들은 오랜 시간 땀을 흘리며 준비했겠지만, 올림픽도 아니고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몇 개 따고 종합 몇 위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던 차였다. 이보다는 북한 선수단이 참가한다고 하니 아시안게임을 통해 남북이 교류하고 화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었다.
이런 까닭에 정부의 소극적 대응으로 북한 응원단이 안 오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적지 않게 실망스러웠다. 아시안게임 내내 경기장 관중석에 빈곳이 많았고 남북 간 축구 결승전 등 일부 경기를 제외하곤 국민들의 관심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18일부터 열리는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현정화와 이분희가 만날 가능성에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었다. 현정화는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촌장이었고, 이분희는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으로서 북한 선수단을 이끌고 참가할 예정이었다.
현정화와 이분희의 추억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이 단일팀을 이뤄 여자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던 일이 떠올랐다. 여자복식에서 현정화와 이분희가 한 조를 이뤄 중국과 유럽의 강팀들을 이기고 또 이기는 모습을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남북이 하나가 되니 이렇게 강하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에 남북 선수단은 한 달 가까이 같이 생활했다. 대회를 마치고 현정화와 이분희가 도쿄 프린스호텔에서 헤어지며 서로 부둥켜안고 울 때에는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함께 울었다. 그랬던 현정화와 이분희가 23년 만에 만날 뻔했다. 그러나 최근 두 사람은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사고를 당했다. 현정화는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어 선수촌장에서 물러났고, 이분희는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이다.
적지 않게 실망을 하던 차에 주말에 느닷없이 빅뉴스가 터졌다. 북한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 등 북측 최고 실세들이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한다며 갑자기 인천을 방문한 것이다. 외출 중이어서 차안에서 DMB로 폐막식을 지켜봤다. 폐막식 시청률이 개막식보다 높았다고 한다. 인천아시안게임이 결국 대회 마지막 날 흥행에 성공한 셈이다.
북한이 고위 인사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보낸 것은 처음이다. 1990∼92년 연형묵 총리 일행이 남북 총리회담을 위해 여러 차례 서울을 방문했을 때보다 격이 더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이 방문한 날은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을 통해 발표된 10·4선언 7주년이기도 하다. 물론 북측의 이번 방문이 대외 이미지 개선을 위한 일종의 깜짝쇼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남북관계가 금방 좋아질 것으로 예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남북협력의 기회 살려야
그러나 비록 깜짝쇼일지라도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만드는 능력이 우리 정부에게 필요하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교류와 협력을 일절 하지 않겠다거나, 천안함 사건에 대해 북한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5·24조치를 해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면 남북관계는 풀어가기 어렵다. 남북관계는 이명박정부 1년차이던 2008년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이후 사실상 단절돼 왔다. 꼬박 6년 동안 서로 빗장을 걸고 지냈다. 결과는 어떤가. 북한의 핵개발 능력은 강화되었고, 남북의 화해협력 사업은 개성공단 이외에 올스톱이다.
우리 경제를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긴요하다. 북한 지하자원 개발이나 유라시아 철도 연결 등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구상도 실현될 수 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이번에 오솔길을 냈으니 대통로를 열자고 말했다. 이명박정부 때 하지 못했던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시기는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남북정상회담도 못할 게 없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도 벌써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신종수 사회2부장 jsshin@kmib.co.kr
[돋을새김-신종수] 마지막날 흥행 성공한 아시안게임
입력 2014-10-07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