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우동집 사장으로 변신한 김정길 前 행정자치부 장관

입력 2014-10-08 02:08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더 이상 정치인이 아니다. 우동집을 어떻게 잘 운영할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로 뛰는 자그마한 식당 주인이다. 그는 "경제가 정말 어렵다. 식당이나 가게, 중소기업들은 바닥 경기에 맞서 악전고투하고 있다"며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했다. 부산=김태형 선임기자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지난 2일 오전 10시 반, 부산 서면역 근처에 있는 우동집 ‘하루’에서 점심손님 맞이 준비에 분주했다. 청바지 차림을 하고는 밀대로 바닥을 닦고, 식탁 수저를 정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정오가 되자 인근 남녀 직장인들이 몰려들었다. “어서오세요”라는 인사말이 익숙하게 나왔고, 상당수 손님들은 “장관님, 고생 많으십니다”라고 화답했다. 한때 대한민국 정치의 한복판에 섰던 김 전 장관은 어느새 우동집 사장으로 변신해 있었다.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부산에 내려가 지난 1월 우동집을 연 김 전 장관은 여전히 밝고 환한 표정에다 역동적인 모습이었다. 염색을 하지 않아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것 빼고는 정치할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손님들이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점심식사를 함께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떻게 식당을 열 생각을 했습니까?

“이 건물이 동생 소유인데 2층에 임대가 나가지 않아 고민이라는 소리를 듣고 노느니 식당이나 한번 해볼까 했던 게 출발점이었습니다. 35년 동안 정치를 하면서 바깥에서 밥 먹는 게 항상 걱정거리였습니다. 맛있는 건 턱없이 비싸고, 싼 것은 맛이 없는 데다 비위생적이란 생각이 들잖아요. 이 주변에 젊은 샐러리맨이 많아 저렴하면서도 맛있고 깨끗한 음식을 한번 만들어 팔아보자는 생각에 우동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우동을 참 좋아하는데 일본에 비해 한국에는 우동을 맛있게 하는 식당이 드물어요. 해운대에서 일식집을 하는 지인을 통해 기본 지식을 익혀 일본인과 한국인 등 2명의 주방장을 모셨습니다. 일본 스타일을 우선시하되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하자는 취지입니다.”

-얼마짜리 우동입니까? 다른 메뉴도 많은 것 같습니다.

“기본 우동은 6000원이고요 다른 식재료가 추가된 것은 7000원 받습니다. 우동의 인기가 좋긴 해도 그것으로는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어 쇠고기덮밥, 돈가스정식, 생선초밥, 메밀국수도 합니다. 저녁에는 생선회가 포함된 코스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데 맥주 마시는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그래서 지금 수지는 맞습니까? 식당 자랑 좀 해 주시죠.

“다행히 6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는 데다 집사람이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희 식당에선 인공조미료를 일절 쓰지 않습니다. 좋은 식자재를 사용하되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자는 전략이 먹힌 셈입니다. 최상의 맛을 유지한 박리다매인 셈인데 손님들의 반응이 좋습니다. 특히 우동은 맛이 좋다고 부산에선 꽤 소문이 났습니다. 식당 이름 하루가 일본말로 ‘봄’이란 뜻인데 인생의 봄날처럼 손님을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십니까?

“승용차로 약 30분 거리인 해운대에 사는데 지하철로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식당으로 출근합니다. 하루 종일 식당에서 일합니다. 바닥 및 화장실 청소, 수저종이 끼우기, 식탁보와 휴지 정리하기 등 할 일이 끝도 없습니다. 마지막 가게 셔터도 제가 내립니다. 거의 지하철 막차를 탑니다. 부산에서 오랜 기간 정치를 했기 때문에 지하철로 오가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저를 알아봅니다. 국회의원과 장관을 했다는 사람이 자가용을 안 타고 비서도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이상하다는 거죠. 그러면 제가 ‘저는 지금 국회의원도 아니고 장관도 아니고 그냥 우동집 주인입니다’라며 웃지요. 사진을 같이 찍자는 분, 사인을 해 달라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연예인 못지않습니다. 하하. 그분들과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소통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식당에선 저녁에 손님들과 어울려 맥주 한잔씩 하며 많은 얘기를 나눕니다.”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봉사활동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지역신문에 보도되는 바람에 알려졌는데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서면 지하철역에 노숙인들이 많습니다. 저녁 9시 반쯤 그곳에 가보고 대부분 저녁을 굶은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드락’이라는 이름의 도시락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드리는 도시락’이라는 뜻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자는 생각입니다. 저와 제 아내가 번갈아 가며 도시락을 리어카에 싣고 가면 적게는 30명, 많게는 50명 정도가 모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하니까 저희에게 고마워할 뿐 아니라 술을 적게 마시게 되었다고 해서 뿌듯합니다. 처음엔 또 시장선거 나오려고 저런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만 지금은 다들 좋은 뜻으로 봐주는 것 같습니다. 수십년 동안 정치하느라 세상에 빚진 게 얼마나 많은데 이 정도 봉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치에 미련 없습니까? 아직도 정계복귀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완전히 마음 접었습니다. 저는 세속적 관점에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국회의원을 두 번밖에 못 했거든요. 3당 통합 이후 부산에서 무려 7번 선거에 나갔다가 모두 떨어졌습니다. 정치인에게 선거에서의 낙선은 정말 충격이 큽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정말 미안한 일이지요. 하지만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평생 지역주의 정치를 타파하고자 스스로 몸을 던져 원칙과 명분, 명예를 지키며 살았다는 점에서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자부합니다. 특히 부산시민들은 그것을 잘 알아줍니다.”

식당 한 구석에 오리알 모양의 하얀 등불이 2개 놓여 있기에 무언지 물어봤다.

“3당 통합 이후 저와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에서 낙동강 오리알이라 불렸습니다. 큰 것은 노 대통령이고 작은 것은 저를 상징하는 알입니다. 큰 것은 부화를 해서 왕오리가 되었습니다. 작은 것은 20년이 지나도록 부화하지 않으니 썩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허허.”

아무리 정치를 떠났다고 하지만 현실정치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정계를 은퇴한 지 1년4개월이 지났는데 일개 시민에게 대한민국 정치는 어떻게 보입니까?

“정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는 소시민 입장에서 보면 우리 정치는 국민의 현실적인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요식업소와 각종 가게, 중소기업 경기는 한마디로 말이 아닙니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세월호와 함께 완전 침몰했다고 보면 됩니다. 정치권이 세월호 사고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보고 일을 해야 하는데 오로지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있으니 국민들 원성이 하늘을 찌릅니다. 세월호만 해도 원인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책 마련 등 3가지가 전부 아닙니까. 정치권이 이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6개월 동안 우왕좌왕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대통령, 정부, 여야 가운데 누가 가장 잘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통령과 국회의원, 장관은 모두 국민들이 일시적으로 고용한 계약직입니다. 다들 국민의 머슴입니다. 대통령은 상머슴이고요. 그런데 그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계약 내용을 무시한 채 자기중심적으로 일을 하니 상전인 국민들이 불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야당 출신입니다만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은 ‘새 정치’를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허구한 날 파벌싸움을 하는 게 너무 가슴 아픕니다. 선장도 없이 표류하고 있는 저 당을 어느 국민이 지지하겠습니까.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지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답하긴 마찬가지지요. 이명박 대통령보다는 좀 나을 줄 알았는데 더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대통령은 큰 틀에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제가 정부에 있을 때 이루지 못한 것이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가진 강점을 살리는 데 정부가 투자를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휴전선, 바다, 산지 활용이 그것입니다.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은 우리의 약점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만 있는 훌륭한 관광자원입니다. 휴전선 관광과 철조망을 이용한 관광 상품화를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엔 산지가 70%나 됩니다. 스위스처럼 산지를 제대로 개발하고 관리해 관광객을 끌어모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전무합니다. 전국이 난개발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지요. 3면이 바다로 싸여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바다를 활용해 국가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친 김 전 장관은 중앙정치 무대가 그립지 않으냐는 물음에 “인생에 정치만 있는 게 아니더라. 소시민적인 삶이 의외로 좋다는 걸 요즘 많이 느낀다”고 답했다.

김정길 전 장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반골 야당 정치인’이었다. 1990년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3당 통합(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에 반대하며 합류를 거부한 이후 지역주의 정치 타파의 선봉에 섰다.

3당 통합 이후 부산에서 6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2010년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장렬히 전사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부산시장 선거에선 민주당 후보로 44.6%나 득표해 저력을 과시했다.

김대중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 김중권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더불어 ‘영남 차세대 주자 3인’으로 주목받았으나 노 전 대통령에게 자리를 내줬다. 2012년 대선 출마를 준비했으나 뜻을 펴지 못했으며, 2013년 6월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부산에 정착했다.

△경남 거제(69) △동아고, 부산대 △12대, 13대 국회의원 △민주당 원내총무, 부총재 △행정자치부 장관 △청와대 정무수석 △대한태권도협회장 △대한체육회장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 고문

부산=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