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오를 때만 해도 저자는 온갖 세상 시름 다 짊어진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이 성지순례는 원래 남편, 고재곤 장로의 80세 생일을 기념해 1년여 전부터 준비한 것이었다. 처음 가는 그 길을 위해 부부는 성지순례에 관한 말씀이며 책을 얼마나 열심히 읽고 연구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손꼽아 순례길을 준비했는데, 남편이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위암 판정을 받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2012년 가을, 이별을 준비할 새 없이 남편을 떠나보냈다.
1968년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저자는 메릴랜드대에서 영양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농무부 인간영양연구소 연구원, 오클라호마주립대 교수를 지냈다. 저자의 3남매 중 막내가 삼성과 애플 간 소송을 맡고 있는 루시 고(한국명 고혜란) 미 연방판사다. 미국에 거주 중인 저자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저자는 고 판사를 비롯한 자녀들과 관련해선 말을 아꼈다. “루시는 어려서부터 모든 면에서 철저하고 리더십이 강했으며 남을 배려하는 게 남달랐습니다. 눈물도 많은 편입니다. 큰일을 시작할 때는 언제나 무릎을 꿇고 기도로 준비했습니다. 삼성, 애플 소송을 담당할 때도 저에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남편에 대해선 “유머가 풍부해 주변을 즐겁고 편안하게 해줬다”고 회상했다. “남편은 하나님의 일이 최우선이었습니다. 그는 목회자의 길이 어울렸는데, 평신도 사역자가 더 좋았던 모양입니다. 정의를 삶의 목표로 삼고 항상 노력했던 남편은 아이들에게는 참 다정했습니다. 그런 남편이 떠나고 저는 얼이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만남도 거부했습니다. 성지순례가 무슨 소용인가, 다 취소하려고 했는데 자녀들이 강권했습니다.”
남편 대신 자녀들이 엄마의 순례길을 동행했다. 그리고 저자는 그 길 위에서 주님을 만났다. 오히려 “이 성지순례가 남편의 80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 아니라 울게 될 나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여행 같았다”고 고백했다.
책은 ‘예수님과 함께 걷는 여정’이다. 저자는 주님의 일생을 그대로 따라 걸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잡수셨던 이스라엘 전통 음식을 예수님과 한 상에 마주하는 느낌으로 먹었다”거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러 올라가셨을 때 광채가 나는 하얀 모습으로 변형되셨던 변화산도 같이 밟았다”(315쪽)고 회고했다. 또 주님이 고통당할 땐 그 고통을 함께 겪었고, 같이 기도하고 울었다.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지게 하고 예수를 따르게 했다. 십자가를 진 시몬의 조각이 제단 위에 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눈물 나는 기도로 온통 밤을 새우시고 채찍질당하시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더 이상 걸을 수 없이 지친 예수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시몬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강제로 진 십자가로 인해 시몬은 온 인류 중 가장 축복받은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질 수 있는 은혜를 누린 사람은 인류 역사상 고금을 통해서 시몬뿐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원한 상급이 얼마나 크겠는가!”(208쪽)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저자는 성경 말씀을 구체적으로 들어가며 이스라엘 역사를 연대별로 소개했다. 전문 사진작가들의 사진은 성지의 느낌을 한껏 살려준다.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르지만 십자가를 믿는 우리는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저자가 성지에서 느낀 영원한 생명에 대한 벅찬 감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한없는 축복으로 다가온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남편 빈자리 예수님이 함께 성지 순례
입력 2014-10-08 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