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이른바 ‘검침원 강도’ 사건이 유행한 적이 있다. 검침원을 가장해 가정집에 들어가 부녀자를 흉기로 위협해 금품을 털어가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부녀자를 성폭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검침원 복장을 한 채 “검침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면 쉽게 대문을 열어주는 세태를 악용한 범죄였다. 가정집 외부에 설치돼 있는 전기차단기를 내려 정전시킨 뒤 침입하는 수법도 동원됐다.
범행 전에 준비할 게 별로 없고, 힘이 약한 부녀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여서 실패할 확률이 높지 않은 게 특징이다. 집에 들어갔다가 부녀자가 혼자 있으면 흉기를 들이대고,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얼렁뚱땅 둘러대며 그냥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모방범죄가 극성을 부렸다. 전국 곳곳에서 유사 범죄들이 이어졌다. 경찰과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주의보를 내린 덕분인지 최근엔 ‘검침원 강도’ 사건 기사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검침원들이 실직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다. 정부와 한전이 전기 원격검침사업(AMI)을 추진키로 했기 때문이다. 한전은 2020년까지 AMI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5900여명인 전기 검침원들이 6년 뒤면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다 수자원공사와 가스공사도 AMI를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와 가스 검침원까지 모두 합칠 경우 실직의 두려움에 휩싸일 검침원은 1만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시대흐름과 함께 우리 주변에서 어쩔 수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것들이 있다. 전화번호부와 비디오 대여점, 우체통, 공중전화 부스, 편지쓰기 등. 검침원도 그 대열에 들어선 모양이다. 검침원과 함께 검침원을 가장한 강도도 조만간 자취를 감추게 될 듯하다.
검침원 평균 연령은 50대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박봉이라도 벌려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정부는 검침원들을 재교육시켜 신생업무에 배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검침원들이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효과적인 방안을 강구해야겠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
[한마당-김진홍] 위기의 검침원
입력 2014-10-07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