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주대준 (2) 고아원 시절 내 인생의 등불이 된 ‘요셉의 꿈’

입력 2014-10-07 02:25 수정 2014-10-07 13:00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살던 시절의 주대준 교수. 주 교수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어릴 적 사진이다.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자가 우리 가문의 시조다. 어릴 때 기억을 떠올리면 우리 집안은 유교를 숭상하며 조상을 엄격히 섬기는 집안이었다. 그러나 석가탄신일에는 어김없이 절에 가 가족들의 이름을 올렸다. 수시로 가까운 암자에 가서 불공을 드렸고, 급할 때는 무당을 불러 굿도 하는 집안이기도 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유·불교와 조상교, 무속신앙이 혼합된 종교를 섬기는 집안이었다.

내가 경남 거제도로 오기 전에는 예수님이나 하나님, 성경 등 기독교에 관한 말을 한마디도 들어보지 못했다. 거제도에서 난생처음 교회를 봤다. 주일학교에서 요셉과 다윗의 이야기를 들으며 흥미를 갖게 됐다. 특히 요셉에 마음이 끌렸다. 남의 나라에 종으로 팔려간 요셉은 감옥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나중에 국무총리가 됐다는 역전 드라마는 어린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요셉의 이야기만 나오면 몰입했다.

거제도 생활은 비참했다. 재기에 온갖 애를 쓰던 아버지는 심한 스트레스에 일본 식민통치 시절 고문을 당했던 후유증까지 재발해 결국 자리에 누웠다. 아버지가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나는 주일학교에서 외운 요절을 종이에 적어 아버지가 누워 있는 벽에 붙여 놓고 큰소리로 읽으며, 아버지 허리를 밟고 안마를 했다. 놀랍게도 내가 성경 말씀을 크게 읽을 때는 아버지 통증이 멈췄다. 그 이후로 통증이 심할 때마다 나를 불러 성경 말씀을 크게 읽어 달라고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거제도에서 지낸 2년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지만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요셉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께 의지하는 영성 수련 기간이었다.

큰아버지와 아버지를 연이어 먼저 보내고, 손자들을 한집에서 키우던 할머니는 한 맺힌 여인 그 자체였다. 이른 아침과 저녁마다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 놓고 손이 닿도록 빌며 “천지신명이여 우리 손자, 손녀 잘 거두어 주세요”라고 애걸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그렇게 애처로울 수 없었다.

보혜사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나는 더 이상 과거 무속신앙 집안의 아들, 손자가 아니었다. 초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경남 하동군 옥종면에 살고 있는 큰아버지 집으로 가기로 했다. 집주소만 갖고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걸어 한밤중에 도착했다. 신작로를 걷다가 산을 넘어 지름길로 가다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고, 강을 건널 땐 강물에 빠질 뻔한 위험도 있었다. 그래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때를 회상하면 보혜사 성령님께서 철저히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며 지켜 주신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큰아버지 집에서 한 달도 못 버텼다. 결국 고향인 경남 산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더 이상 할머니한테 의지할 수 없었기에 앞길은 막막했다. 친척들은 우리 형제를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경남 거창 고아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거창 고아원에서의 생활은 정말 견딜 수 없었다. 열흘도 못 견디고 거창 고아원을 몰래 빠져나와 고향으로 도망쳤다. 이번에는 고향에 있는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이곳은 함께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도 있었고, 시설도 좋았다. 그러나 고아원 아이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왜 우리 밥 축내러 왔느냐’는 것 같았다. 우리 형제들 때문에 자기 밥그릇이 작아진다는 투정이 시작됐다. 마치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기득권의 생리를 난 어린 나이에 고아원에서 뼈저리게 체험했다.

고아원 생활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고통과 슬픔, 어려움이 가득했다.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건 그래도 나는 요셉의 형편보다 낫다는 우월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령님의 인도함으로 어떤 환경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믿음과 희망, 용기가 나의 마음속으로부터 솟아올랐다. 종으로 팔려간 요셉은 남의 나라에서도 국무총리를 하는데,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내가 ‘뭘 못해!’라고 생각했다. 주씨 아저씨의 집 같았던 거제도 지세포교회에서 만난 예수님은 이미 나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정리=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