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실세들 깜짝 방문] 김정은 전용기 이용… ‘최고 실세’ 위상 과시

입력 2014-10-06 05:00 수정 2014-10-06 15:44
4일 인천을 전격 방문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12시간 동안 숨 가쁜 일정을 보내면서도 우리 측 인사들과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11명의 북측 대표단은 오전 10시10분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부터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우선 이들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전용기를 타고 왔다. 전용기는 기체 앞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글자와 인공기가 새겨져 있고 꼬리 날개 부분에는 큰 별이 그려져 있었다. 또 자체 경호원까지 데리고 왔다. 남측을 방문한 북한 대표단이 자체 경호원의 경호를 받는 모습은 지금까지 다른 북측 사절단과 비교해볼 때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전 북측 사절단과 달리 '최고 실세'로서의 위상을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대표단을 맞아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오전 11시10분쯤 인천 송도 오크우드호텔에서 마련한 티타임 때는 인천아시안게임 남북 축구전 얘기가 화제로 나와 유쾌한 분위기에서 덕담을 주고받았다. 34분쯤 티타임이 끝나고 류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이 나왔으며 북한 대표단은 오후 1시30분까지 두 시간가량 환담 장소에 머물렀다. 당초 인근 선수촌으로 이동해 북한 선수단을 격려하고 1시쯤 오찬 장소로 이동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찌된 일인지 일정이 바뀌어 긴 시간 휴식을 취한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이 '묘연한 2시간'을 두고 북한 대표단과 우리 측이 오찬 전 사전 접촉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다. 오크우드호텔엔 우리 측 상황실도 꾸려져 있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2시쯤 호텔에 도착했다. 북한 대표단이 머문 장소는 37층이고, 김 국가안보실장은 60층대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환담 뒤 오찬회담 전까지 남북 간 접촉은 일절 없었다고 밝혔다.

오후 1시50분 인천 남동구 한식당에서 열린 오찬회담에선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발언들이 쏟아졌다. 김 국가안보실장은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고 남북관계도 그 수확을 거둬야 되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도 "(TV 등에서) 이렇게 저렇게 보던 분이지만 처음 만났으니까 앞으로 더 구면이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김 제1비서의 친서는 없었지만 김 제1비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전해져 회담장 분위기는 한층 밝아졌다. 다만 우리 측에서 청와대로 박 대통령에 대한 예방(禮訪) 의사를 타진했지만 북측의 시간관계상 방문이 이뤄지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북한 대표단은 인천아시안게임 폐회식에 앞서 오후 6시45분쯤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와 만나서도 만면에 웃음 띤 모습으로 대화했다. 이후 현장을 찾은 여야 의원 10여명과 뜻밖의 만남을 갖기도 했다.

북한 대표단은 폐회식을 우리 측 당국자들과 나란히 앉아 애국가가 연주될 때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표시했다. 폐회식 종료 직후 정 총리와 류 장관을 비롯한 우리 측 인사들과 비공개로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황 총정치국장은 우리 측 환대에 감사를 표하며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로 열어가자"고 강조했다. 이들은 오후 10시25분쯤 평양으로 돌아갔다. 우리 측은 돌아가는 북측 대표단에게 홍삼 제품 등 소정의 선물을 전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