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4일 전격 방남(訪南)한 북한 고위급 인사들을 통해 대북·대남 메시지를 교환했다. 직접 만나는 정상회담 자리는 아니었지만 최고 실세 메신저를 통한 '간접 정상회담'을 이어간 셈이다. 박 대통령과 김 제1비서 모두 궁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절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양측의 대화와 교류 폭은 한층 넓어질 전망이다.
◇박 대통령의 간접 메시지 주목=박 대통령이 김 제1비서의 대남 메신저 역할을 하는 북측 고위급 인사들을 먼저 만날 의사가 있다고 밝힌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언제든 필요하면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지난 3월 독일 국빈방문 당시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엔 전제가 붙는다. '대화를 위한 대화, 이벤트성 대화는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취임 이후 북측 인사를 접견한 적이 없다. 그럴 기회도 없었다.
그런 박 대통령이 북측 인사들을 직접 만날 뜻이 있다고 밝힌 것은 일단 자신의 대북정책과 통일준비 구상 전반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측 최고 실세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노동당 비서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설파한다는 것이었다. 북측은 "인천아시안게임 폐회식 참석을 위해 방문해 시간관계상 이번에는 어렵다"는 입장을 전해와 면담은 무산됐지만 박 대통령의 대화 의지는 그만큼 강했다.
북측은 애초부터 박 대통령 예방까지 염두에 두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랜 경색 국면에서 전격 방남을 하고, 이어 박 대통령을 면담까지 할 경우 향후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우리 측에 넘겨줄 수도 있다고 판단했음직하다.
그러나 황 총정치국장이 전한 박 대통령에 대한 김 제1비서의 '따뜻한 인사말' 역시 북한 최고 지도부의 대남 관계 개선 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김 제1비서는 이미 올해 초 직접 발표한 신년사를 통해 이런 뜻을 밝혔다. 그런 만큼 여건과 환경이 조성되면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경색에서 대화 국면으로 매끄럽게 진행될 여지가 많아진 것이다.
◇대북정책 근본적 전환 시발점 되나=이미 박근혜정부 내에선 대북정책의 세세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대북정책 근간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전면 수정은 아니더라도 방법론 측면에서 정책 조정은 가능하고, 이런 정책변화론은 이미 청와대와 외교안보 부처 내에서 확산되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5일 "정부 내에선 대북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심도 있게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미 어느 정도 활성화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들 조치는 전임 이명박정부에서 취해진 것들이다. 따라서 박근혜정부가 임기 내내 이를 고수할 필요는 없다는 현실론도 나오고 있다. 특히 남북 간 경색 국면이 계속 장기화돼 박근혜정부 출범 3년차를 넘어갈 경우 남북관계의 극적인 반전은 더욱 어렵게 된다.
박 대통령이 올해를 한반도 통일기반 구축의 원년으로 천명하고, 잇따라 대북통일 구상을 밝힌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다. 북핵 등 당장 해결이 어려운 문제는 제쳐두고 환경·문화 협력부터 시작하자는 박 대통령 구상이 실행된다면 남북관계는 예상 외로 쉽게 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北 실세들 깜짝 방문] “남북관계 개선이 北에도 유리”… 직접 설득 의지
입력 2014-10-06 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