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4일 고위급 실세 3명을 한꺼번에 남한에 보내는 ‘김정은식 파격’으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8월에 우리가 제안한 2차 남북 고위급 접촉 제안에 응하며 이달 말 또는 다음달 초에 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2008년 이명박정부 이후 7년째 꽉 막혔던 남북관계가 대전환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근혜 대통령도 집권 1년8개월 만에 한반도 정세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낼 기회를 잡게 됐다.
북측 대표단은 12시간의 짧은 방남(訪南)에도 불구하고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광복 이래 최고위급’ 실세 대표단으로 남한사회를 온통 흔들어놨다. 북한 스스로도 전날 비공개 회담 중에 “남북관계가 워낙 막혀 있어 이것을 풀기 위해 파격적 사건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여러 차례 언급한 것으로 5일 전해졌다.
그만큼 북한도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 목말라한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남북관계가 워낙 오랫동안 풀리지 않아 계기만 마련되면 빠른 속도로 진전될 것으로 예상해 왔다. 마그마가 고일 대로 고여 화산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북측 대표단의 파격적인 예상 밖 방남이 남북관계 개선의 결정적 촉매로 작용할 전망이다.
크게 보면 예상치 못했던 오찬회담은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주의와 김 제1비서의 실용주의가 맞물린 결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일방적 대북 지원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끈질기게 북한의 자세 변화를 주문해 왔고, 김 제1비서는 명분이나 대외적으로 비치는 모양새보다는 현 시점에서 북한에 가장 이로운 선택을 한 셈이다.
북한이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게 확실하다면 남북관계 개선에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을 수 있다. 김 제1비서는 나라를 세운 할아버지와 핵무기를 만든 아버지에 이어 자신은 경제 회복을 국정 최우선 목표로 제시해 왔다. 7년간의 관계 악화로 북한경제가 어려움을 겪어왔기 때문에 앞으로 경제를 위해서라면 남측에 ‘통 큰 행보’를 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관광객 안전 대책, 국군포로 문제 해결 등 남한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대신 금강산 관광 재개와 추가적인 공단 건립, 백두산 관광 추진 등의 반대급부를 챙길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드레스덴 선언’ 등으로 북측에 대한 지원 의지를 밝혀온 만큼 우리 정부도 대북 지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다.
같은 맥락에서 남북 정상회담 추진도 본격화될 수 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가능한 한 집권 전반기에 회담을 해야 결과를 임기 내에 실행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 북한 비핵화 문제가 언제든 남북관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핵 문제 해결 없이 관계 개선에만 나설 경우 국내 반발은 물론 미국과 일본 등도 제동을 걸 수 있다. 그렇다고 김 제1비서가 아버지 유업인 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남북의 두 지도자가 어떤 ‘묘수’로 얼어붙은 한반도를 해빙시켜 나갈지 주목된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뉴스분석-北 실세 3인 주말 폐회식 訪南 왜?] 12시간 전격방문… 7년 남북경색 풀리나
입력 2014-10-06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