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실세들 깜짝 방문] 1964년 도쿄올림픽서 北 신금단 선수-월남한 아버지 상봉

입력 2014-10-06 02:25
현정화(오른쪽)가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중국과의 결승에서 상대의 공을 받아넘기고 있다. 현정화와 이분희는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해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현정화는 음주운전, 이분희는 교통사고로 최근 다시 화제의 인물이 되기도 했다.국민일보DB

북한이 지난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회식에 최고위급 인사들을 파견하면서 앞으로 진행될 남북 해빙무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남북 고위당국자들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나타난 남북의 체육교류 성과에 만족감을 표하고, 스포츠를 넘어 문화예술교류도 적극 추진하자는 데 의견일치를 봤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체육지도위원장 자격으로 방한한 최룡해 노동당 비서는 “조국통일을 위한 사업에서 체육이 제일 앞서지 않았는가 하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다”고 말해 남북 간 체육교류에 상당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스포츠 분야는 그동안 남북 긴장완화와 교류증진의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 분단 후 스포츠를 매개로 한 첫 남북교류는 1964년 북한 육상선수 신금단이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월남한 아버지를 일본에서 상봉한 것이 처음이다.

이후 스포츠를 앞세워 체제 우월 경쟁을 벌여오던 남북은 1980년대 한국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외교적 우위에 서기도 했다. 1990 베이징아시안게임 직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남북 통일축구가 개최됐고, 1991년에는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포르투갈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기도 했다. 남북은 2000 시드니올림픽부터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과 2007 창춘동계아시안게임까지 총 8차례 국제종합대회 개막식에 한반도기를 앞세워 공동 입장하기도 했다.

또 2002 부산아시안게임과 2003 대구유니버시아드, 2005 인천아시아육상선수권 등에는 북한에서 대규모 응원단까지 파견해 체육교류가 절정을 이뤘다. 지난해 9월에는 평양에서 열린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대회에 한국 선수들이 출전, 북한에서 태극기가 시상대에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체육교류는 당시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면서 진정한 남북 화해협력을 가져오는 데는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1990년대 초 남북 체육교류는 노태우 정권의 소위 ‘북방외교’의 연장선에서 벌어진 분위기 메이커에 불과했다. 냉전이 종식되고 러시아, 중국과 외교관계 수립을 추진하던 정부가 스포츠를 통한 남북교류에 발 벗고 나섰던 것이다. 이후 2000년대 초 추진된 남북 체육교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의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 이후 얼어붙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남북 당국자들이 스포츠를 매개로 국면 전환을 시도할 것이 확실시돼 앞으로 스포츠를 포함한 문화·예술 분야의 남북교류는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