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④ ‘손십자가’ 전문 제작 김영득 집사

입력 2014-10-06 02:38
십자가 제작자 김영득씨가 지난 1일 경기도 김포에 있는 자신의 공방에서 대표작인 ‘손십자가’를 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2000년 넘게 전해져 내려온 예수님의 사랑이 담긴 물건이 바로 십자가”라고 강조했다. 김포=강민석 선임기자

예수님의 손을 잡으면 이런 기분일까. 목수가 건넨 십자가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든 생각이다. 얼마간 쥐고 있으니 온기가 느껴졌다. 크기도 안성맞춤이었다. 각진 부분이 없어 오래 잡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십자가 중앙엔 ‘예수’라는 단어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기도할 때 손에 쥐고 사용하는 ‘손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할 때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만든 작품이에요. 십자가가 춤추는 듯한 모습이죠. 많은 성도들이 말씀하시더군요. 손십자가를 쥐고 기도하니 더 큰 평안이 느껴지더라고. 예수님과 악수를 나눈 기분이었다고.”

목수의 이름은 김영득(41)씨. 대학을 다닌 적도, 목공예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도 없다. ‘아마추어 작가’인 셈인데, 그가 만든 손십자가는 교계의 히트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 10월 처음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2만개 가까이 판매됐다. 인기가 치솟자 그의 작품을 흉내 낸 ‘짝퉁’까지 시중에 나돌고 있다.

지난 1일 경기도 김포 문수산성교회에서 김씨를 만났다. 중학생 때부터 이곳에 출석한 김씨는 이 교회 집사다. 교회 식당이자 성도들 사랑방인 예배당 옆 황토집엔 김씨의 작품 100여점이 전시돼 있었다. 십자가 형상에 김씨의 독특한 상상력을 포갠 작품들이었다.

“제가 김포 토박이인데 시골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나무를 갖고 놀 때가 많았어요. 나무로 친구들과 총싸움이나 칼싸움을 하고 나무를 깎아 뭔가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죠. 그러다 20대 초반에 아이스크림 속 나무막대를 붙이고 색칠해 십자가 30여개를 만들었어요. 교회 친구들에게 나눠줬는데 반응이 좋더군요. 그때부터 십자가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고교 졸업 후 김씨는 한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업체에 취직했다. 결혼을 했고 딸 둘을 낳았다. 그런데 2004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십자가를 통해 세상에 주님의 뜻을 알리는 사업을 해보자.’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기쁨수집공방’이라는 쇼핑몰을 창업했다.

“십자가 목걸이를 비롯한 각종 액세서리와 십자가 관련 기독교 용품을 만드는 곳이었어요. 물론 십자가로 큰돈을 벌겠단 야심은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마찬가지고요. ‘짝퉁’ 손십자가가 많지만 대응하지 않는 것도 십자가로 돈 벌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이에요.”

쇼핑몰 사업은 잘되지 않았다. 판로에 대한 고민 없이 뛰어든 데다 사업경험 역시 일천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사순절이나 성탄절 기간이면 단체 주문 덕분에 월 매출이 200만∼300만원을 기록했지만 나머지 기간엔 월 50만원 벌기도 힘들었다.

2006년 만든 손십자가가 히트했지만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더 이상 간호사인 아내 월급에만 의지할 순 없었다. 이듬해 김포의 한 액세서리 공장에 취업했다. 쇼핑몰은 2009년 폐쇄했다. 하지만 십자가 만들기는 계속했다. 지금도 김씨는 퇴근하면 공방에 틀어박혀 십자가를 만든다. 알음알음으로 주문이 들어오는데, 주문량이 많으면 밤을 꼬박 새울 때도 종종 있다.

김씨의 작품을 더 보기 위해 인터뷰 장소를 그의 공방으로 옮겼다. 공방은 문수산성교회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었다. 자택 마당에 지은 99㎡(약 30평) 크기의 조립식 건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공방 바닥과 벽면에 십자가 수백 점이 전시돼 있었다. 장관이었다. 한쪽 벽엔 특허청에서 받은 총 7개의 ‘(십자가) 디자인등록증’이, 또 다른 벽엔 ‘내 평생 소원은 늘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커다란 나무판이 걸려 있었다.

“십자가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같아요. 예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증표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십자가 만들기에 빠진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십자가 카페’를 차리고 싶습니다. 작품도 전시하고 십자가 제작법도 가르치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차도 제공하는 카페.”

김씨는 부끄러움이 많았고 눌변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작가’ ‘목수’ ‘집사’ 중 어떤 호칭이 마음이 드는지 물었을 때도 열없는 웃음만 지으며 머뭇거리다 명함에 적힌 대로 불러 달라고 했다. 뒤늦게 확인한 명함엔 ‘김영득’ 이름 옆에 ‘섬김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평생 하나님의 증거인 십자가를 섬기며 살겠다는 다짐으로 읽혔다.

김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