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발목잡기 대신 손목잡기를

입력 2014-10-06 02:07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어렵사리 첫 관문을 통과했다. 답답한 ‘세월호 정국’이 한창이던 지난달 19일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된 직후 “세월호법 제정을 위해 전력투구하겠다”고 밝힌 대로 지난달 30일 세월호법 협상을 타결지은 것이다. 그리고 국회 보이콧 36일 만에 본회의장에 들어가 90개 안건을 처리함으로써 ‘5개월 동안 입법 제로’란 오명을 벗었다. 국회 공전 장기화에 대한 따가운 여론도 한몫했으나, 정치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그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문 위원장이 내세운 국회 등원 명분은 ‘강력한 원내투쟁’이다. 국회 내에서 야당의 존재감을 보여주자는 얘기다. 하지만 국회에는 휘발성 강한 현안들이 수두룩하다. 정국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세월호법 처리부터 순탄치 않을 듯하다. 여야가 특검후보군 4명을 선정하면 이 중 2명을 추천위가 뽑기로 합의했으나 특검후보군 선정 단계에서부터 격돌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세월호 유족의 특검후보군 추천 참여는 추후 논의한다’는 합의사항은 향후 논란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세월호법과 함께 이달 말 처리키로 한 정부조직법도 해양경찰청 해체 등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여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자본시장법 그리고 공무원연금 개혁, 담뱃값 및 지방세 인상, 쌀 관세화, 북한인권법 제정 등도 조율이 쉽지 않다. 이런 쟁점들은 7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 표면화될 것이다. 언제든지 대치정국이 재연될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문 위원장 앞에는 당 혁신이라는 과제도 놓여 있다. 7·30재보선에서 완패한 뒤 새정치연합은 혁신을 약속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세월호법을 빌미로 거리로 뛰쳐나가 정부·여당을 공격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딱 그 모양새였다. 뒤늦게 혁신실천위원회를 발족시켰으나, 계파 싸움 또는 대정부 투쟁만 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2012년 대선에서 패한 뒤 민주통합당(새정치연합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문 위원장이 보여준 언행을 복기하면 더욱 미덥지 못하다. 그는 당시 “혁신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첫째도 혁신, 둘째도 혁신, 셋째도 혁신”이라고 말했다. “민생, 생활, 현장에서 정책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도 했다. 그 가운데 실천된 건 별로 없다. 혁신도, 정책정당도 없었다. 소위 야성(野性)과 선명성을 강화하는 쪽으로만 나아갔다. 그 결과 올해 치러진 주요 선거에서 또 연패했고, 다시 ‘임시 선장’을 맡은 문 위원장이 혁신을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이러니 ‘이번엔 제대로 혁신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초 문 위원장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트집잡기, 발목잡기 하는 대신 손목잡기를 하면서 국정운영 틀이 완성될 시간을 줘야 하며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도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확실히 돕겠다.” 하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인사(人事) 실패가 영향을 미쳤지만, 여하튼 정부조직 개편안의 국회 통과가 늦어지면서 박근혜정부는 ‘반쪽’으로 출범했다.

새정치연합이 깨지지 않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은 문 위원장의 과거 발언에 담겨 있다. 걸핏하면 길거리로 나가는 악습을 털어버리는 것을 포함해 투쟁정당에서 탈피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나아가 생활정치에 앞장서는 정책정당으로 체질을 뜯어고치는 게 필요하다.

국정현안 처리 방식과 혁신은 불가분의 관계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으면서 쇄신 운운하는 건 자가당착이요,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민생·경제에 관한 한 더 이상 국정의 발목을 잡지 말고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며 정부·여당의 손목을 잡고 선도(先導)하는 건강한 제1 야당의 모습을 보고 싶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