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기] 기구 여행

입력 2014-10-06 02:10

1783년 6월 4일. 프랑스 발명가이자 제지업자인 몽골피에 형제는 남부 앙노네의 한 들판에서 기구를 하늘로 띄우는 이벤트를 벌였다. 형제는 짚을 태워 만든 뜨거운 공기를 종이와 캔버스로 만든 기구에 가득 채웠다. 기구가 떠오르자 6000여명의 관객이 탄성을 질렀다. 하늘에 오르고 싶은 인간의 꿈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이 이벤트에는 사람 대신 양, 수탉, 오리가 탑승했다.

비행이 성공하자 최초로 기구에 사람을 실어 비행하면 상금을 주겠다는 제안이 나왔다. 최초 비행자를 누구로 선정할지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왕은 안전을 우려해 죄수를 태우자고 생각했다. 형제는 같은 해 11월 21일 직경이 15m가 넘는 거대한 기구에 두 사람을 태운 최초의 비행을 단행했다. 탑승자 중 한 사람은 물리학자 필라트르 드 로지에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죄수를 실어 보내자는 왕 의견에 반대한 아를랑데 후작이었다. 밧줄로 묶지 않은 형제의 기구는 25분간 8㎞를 날았다.

형제의 성공 이후 열흘 만에 물리학자 자크 샤를 등이 수소 기구를 선보였다. 수소는 공기보다 열세 배나 가벼워 부양력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파리 시민의 절반인 40만명이 이를 지켜봤다. 수소 기구는 몽골피에 형제의 기구보다 뛰어났다. 사람을 태우고 2시간5분간 35㎞를 비행했다. 과학아카데미는 그러나 몽골피에 형제의 손을 들어주었다. 최초 비행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기구는 비행선으로 발전해 안전한 여객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비극이 찾아왔다. 1937년 5월 6일 힌덴부르크호가 도킹 시도 중 불길에 휩싸여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파괴됐다. 수소는 인화성이 강하다는 점을 간과한 결과였다. 항공여행 참사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된 이 비극으로 기구는 여객 수단으로의 기능을 상실했다.

미국 민간 우주관광 기업 ‘월드 뷰 엔터프라이즈’가 2016년부터 40만㎥의 헬륨가스 풍선에 선실을 매달아 여행객들을 지구 표면 30㎞ 위로 쏘아 올리는 우주 기구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기구 여행이 예전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김상기 차장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