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안게임] 김태훈, 아시아는 좁았다

입력 2014-10-04 04:12

지난해 7월 멕시코 푸에블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연일 부진을 면치 못하던 한국선수단의 ‘괴물’이 출전했다. 남자 54㎏급이지만 키는 몇 체급 위의 선수와 비슷한 183㎝인 김태훈(20·동아대)이었다. 유럽의 어떤 선수보다 키가 컸던 김태훈은 긴 발을 앞세워 3점씩 주어지는 얼굴 공격을 자유자재로 퍼부었고,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자호구 시스템에 최적화된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 김태훈이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김태훈은 작은 선수라도 빠른 발놀림에 의한 몸통 공격으로 이기곤 하던 과거 채점 방식에서는 대표로 선발되기 힘들었다. 키는 크지만 순발력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계태권도연맹(WTF)이 2009 코펜하겐세계선수권대회부터 전자호구 시스템에 의한 자동채점 방식으로 규정이 바뀌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새 채점 방식으로는 키 큰 선수가 긴 다리를 들고 수비하다가 들어오는 선수의 몸통이나 얼굴 공격을 하면 다득점이 되는 절대 유리한 상황이 전개됐다. 한국도 54㎏급에서 가장 컸던 김태훈을 발굴해 세계무대에 내놨던 것이다.

지난 5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아시안게임 예열을 마쳤던 김태훈은 3일 인천 강화군 강화고인돌체육관에서 열린 태권도 남자 54㎏급 결승에서 황위런(대만)을 14대 3으로 완파하고 정상에 섰다.

준결승까지 세 경기를 모두 ‘점수 차 승리’(2라운드까지 12점차 이상 승리)로 장식하며 결승에 올랐던 김태훈은 지난 8월 난징유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17세의 황위런을 가볍게 물리쳤다. 곱상한 얼굴에 전혀 격투기 선수답지 않는 인상인 김태훈은 1라운드에서부터 세 차례 몸통 공격 성공으로 3-0으로 앞섰다. 이어 2라운드에서도 다시 세 차례 몸통 공격과 상대의 경고 등으로 4점을 추가, 손쉬운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이번 대회에서 최소 6개의 금메달을 목표로 했던 한국 태권도는 금 6, 은 2, 동 2개를 획득해 지난 광저우대회(금4, 은4, 동 2개)를 능가하는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에 처음 채택된 국산 전자호구 ‘KP&P’는 강력한 몸통 공격은 점수화되지 않고 어설프게 스치는 공격은 득점으로 인정되는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 각국 선수단의 빈축을 샀다. 한국 선수들은 첫날 4명이 출전해 ‘노골드’에 그치자 KP&P로 점수 내는 요령을 따로 연습한 끝에 제 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다.

인천=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