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상황까지 갔던 홍콩 민주화 시위 사태가 일단 대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가까스로 실마리를 잡긴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는 여전히 힘들다는 분석이다.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은 2일 밤 11시30분 긴급 가자회견을 갖고 “보편적인 참정권을 위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사퇴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시위대에 대화를 제안했다. 정부 측 협상대표로는 캐리 람 정무사장을 내세웠다. 시위대의 사퇴 요구 시한 30분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3일 새벽 시위대 측은 일단 렁 장관의 대화 제안을 수용했다. 홍콩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聯會)는 성명을 통해 “정치개혁에 중점을 두고 정부와의 대화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람 정무사장과의 대화는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학생들과 함께 도심 점거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센트럴을 점령하라’도 “대화가 현재의 정치적 교착 상태에 전환점을 제공하기를 바란다”며 환영했다. 하지만 두 단체 모두 렁 장관의 사퇴를 거듭 주장했다.
이에 따라 양측 간 대화가 시작될 것으로 보이지만 시위대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우선 시위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 한때 20만명 가까운 시민들이 도심 점거 시위에 나섰지만 홍콩의 연휴가 끝나는 2일 밤에는 수천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3일 낮 동안 도심 점거시위를 지속한 인원은 수백명에 불과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대학생 에드윈 렁은 로이터 통신에 “시위대는 점거 시위를 계속하자는 쪽과 그만 접자는 쪽으로 나뉘어 있다”면서 “리더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시위 지도부가 정부의 대화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정부청사 건물을 둘러싸고 있던 학생 시위대 100여명은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홍콩 정부는 이날 하루 동안 임시로 정부 청사를 폐쇄했다.
훙후펑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정부의 대화 제의는 여론이 반(反)시위 정서로 돌아설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대화가 진행되더라도 홍콩과 중국 정부가 의미 있는 양보를 할 가능성은 극히 낮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영언론을 앞세운 중국의 비난전과 여론 공세도 계속됐다. 신화통신은 인민일보 평론원이 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의 결정을 결연히 수호할 것’이라는 기고문을 소개하며 시위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기고문은 “일부 사람들이 홍콩을 어지럽히고 불법 집회를 선동하고 격렬한 가두시위 방식으로 중앙정부를 물러나라고 협박하고 있다”면서 “이런 방식은 성공하지 못할 운명임이 이미 결정돼 있다”고 주장했다. 신화통신은 또 홍콩의 친중(親中) 단체들이 시위에 반대하며 ‘파란 리본’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인터넷 대연맹’을 결성한 친중 단체들은 4일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한편 렁 장관의 딸이 페이스북에 시민을 조롱하는 글을 올려 아버지 처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영국 데일리메일 등이 보도했다. 렁차이얀은 1일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 속 자신의 목걸이를 개목걸이 같다고 비난하는 댓글이 달리자 “이 목걸이는 (홍콩 명품 백화점인) 레인 크로퍼드에서 산 것이고 물론 당신들 납세자의 돈으로 산 것이다. 내 아름다운 구두와 드레스, 클러치는 모두 세금으로 샀다”고 조롱하는 글을 올렸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홍콩 시위사태 일단 대화국면… 성과 있을지는 불투명
입력 2014-10-04 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