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감원, 퍼렇던 ‘서슬’ 어디 갔나

입력 2014-10-04 00:43 수정 2014-10-04 04:25

금융감독원은 3일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해 전 금융권에 전파했다. 금감원은 “실효성 없는 적발 위주의 검사 관행을 혁파하겠다”고 제재업무 혁신을 예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시행세칙 제45조 ‘직원에 대한 제재’ 부분이 다수 고쳐져 있었다. 금융회사 직원이 잘못을 저지른 경우 금감원장이 직접 제재를 내리기보다는 금융회사 스스로 처리토록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기존에 금감원장의 직접 조치 요구 대상에 포함돼 있던 “다수의 금융업에서 지속적·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공통 지적사항”은 개정안에서 삭제됐다. 금감원장이 직접 손을 댈 수 있는 ‘중대위반행위’의 유형은 구체적으로 규정됐다. 지금까지는 “검사 실시 부서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항”이라면 금감원장의 직접 제재가 가능했지만 이 역시 개정안에서 빠졌다.

금감원이 한발 물러서는 대신 금융사 자체 감사를 확대하려는 것은 ‘창조금융 활성화’로 설명되고 있다. 금감원은 금융권에 세칙 개정을 알리며 “보수적 금융문화 혁신을 통한 창조금융 활성화를 위해 직원 조치를 위임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금감원이 주장하는 혁신이 연초의 기조와 정반대에 가까운 급격한 변화라는 데 있다. 사상 처음으로 4대 금융지주 회사를 동시다발적으로 특별검사하던 연초만 해도 금감원은 “인력이 부족하지만 현장 중심 검사를 확대하겠다” “봐주기 검사는 없다”고 강조했었다. 지난 2월 24일에는 최수현 금감원장이 ‘암행검사 제도 도입’ ‘기동타격대식 현장 점검’을 골자로 업무계획을 국회에 보고했다. 최 원장은 당시 “검사 종료일과 무관하게 문제점을 뿌리 뽑는 ‘진돗개식 끝장 검사’를 올해 대대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7개월 만에 금감원은 종합검사 횟수를 50% 이상 줄이겠다는 새로운 혁신안을 내놓은 상태다. 이에 금감원 내부에서도 지나친 ‘코드 맞추기’에 대한 불만이 크다. 대통령이 진돗개 정신을 언급하면 ‘진돗개식 끝장 검사’가 강조되고, 보신주의 타파를 말하면 ‘금융권 종합검사 축소’가 발표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직원은 “진돗개가 1년도 안 돼 푸들로 변했다”며 “앞으로는 금융회사들에 꼬리를 흔들어야 한다”고 자조했다. 다른 한 직원은 “금감원의 잦은 검사로 자율 경영과 적극적 영업이 위축된다는 것은 내부통제에 문제가 있는 금융회사들이 흘리던 해묵은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급격한 금감원의 방향 틀기에 시민사회의 눈길도 곱지 않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솜방망이 처벌’ 추궁을 예상해 나름대로의 근거를 마련해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금융소비자원 조남희 대표는 “금융 당국의 검사 원칙은 연중에 바뀔 만한 사항이 아닌데 창조경제라는 명분에 따라 편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리에 따라 감독·검사 원칙이 바뀐다는 인상을 주면 당국에 대한 신뢰가 저하된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