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31호 경주 첨성대를 보러 간 건 중학교 수학여행 이후 약 40년 만이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축조된 첨성대는 140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신라를 넘어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중학생 시절 첨성대를 보면서 “엄청 크다” “어떻게 쌓았을까” “이곳에서 보는 달과 별은 얼마나 밝았을까” 등 생각이 들었다.
지난 1일 다시 본 첨성대는 이전의 기억과 달리 작고 초라해 보였다. 첨성대가 최근 급격하게 기울어지고 석축도 벌어지는 현상이 가속화돼 붕괴 위험까지 우려된다는 논란 때문인지 육안으로도 기울어져 보였다. 하지만 이날 ‘구조안전 문화재위원 긴급 현지조사’를 실시한 문화재청은 “기울어진 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첨성대의 안전점검(구조모니터링)은 1981년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됐으나 기울기 측정은 2009년 10월 처음 했다. 이때 기단 중심과 맨 꼭대기 정자석의 중심을 연결선 삼아 측정한 결과 북쪽으로 200㎜, 서쪽으로 7㎜ 기울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5년 만인 지난 1월 조사 결과 북쪽 204㎜로 4㎜가 더 기울었고 서쪽은 변동이 없었다.
지난 9월 23일 규모 3.4의 지진이 발생하기 직전에는 북쪽 203.97㎜로 1월에 비해 오히려 0.03㎜가 줄었고, 지진 직후에는 북쪽 205.05㎜로 1.05㎜가 늘어났다. 2009년에 비해 3∼5㎜의 변화가 있지만 측정 시점과 날씨, 기준점 설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특히 지진 전후 변화가 미미해 최근 급격하게 기울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석축 사이의 틈새는 7곳에 측정점을 설치해 지난해 5월과 지난 4월·9월 조사한 결과 서쪽 부분 최대 131.45㎜까지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틈새 최소치(130.59㎜)와의 변화량은 0.89㎜로 이 역시 특별한 문제는 없다고 게 문화재청의 판단이다. 기울기와 틈새 모두 100년 전 사진에서도 확인되는 것으로, 새삼스러운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첨성대가 북쪽으로 기울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정된다. 기반을 받치는 호박돌이 남쪽보다 적고, 일제 강점기 때 이쪽 방향으로 도로가 조성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 동안 풍상을 겪은 자연현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약간 기운 상태에서 천문 관측이 더 잘되기 때문에 축조 때부터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설도 있다.
첨성대가 언제부터 기울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200㎜ 정도 기울어져 있고, 석축도 최대 130㎜가량 곳곳에서 벌어짐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기울기 조사가 2009년 한 번, 올해 세 번 합해 겨우 네 번 이루어지고 석축 조사도 지난해 한 번, 올해 세 번 실시한 수치를 근거로 “문제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첨성대 구조가 이상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려면 이를 판단할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근거가 없다. 콘크리트 현대건축물의 경우 내진성능평가 기준과 안전점검 범위 등이 법으로 명시돼 있지만 첨성대는 안전성을 판단할 기준이 없는 상태다. 문화재는 제작 시기에 따라 각기 다르기 때문에 보편적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기울기 변화를 꾸준히 측정하는 수밖에 없다. 자료가 어느 정도 쌓여야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숭례문 부실 복원과 석굴암 균열 논란에서 보듯 문화재에 대해 확실한 근거도 없이 큰일 난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영원히 보존·관리하기 위해서는.
이광형 문화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
[내일을 열며-이광형] 기울어진 첨성대를 어떻게
입력 2014-10-04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