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해파리의 역습

입력 2014-10-04 00:20
해운대에 나타난 노무라입깃해파리. 국민일보DB

“머리와 꼬리가 없고 얼굴도 눈도 없다. 몸은 연하게 엉켜 있어 타락죽과 같고, 모양은 중이 삿갓을 쓴 것과 같다. 허리에는 치마를 달고 발을 늘어뜨린 채 물속을 떠다닌다. 갓양태 안쪽에는 매우 가늘고 수제비 가락처럼 생긴 머리털이 무수히 많이 달려 있다.”

정약전이 ‘현산어보’에서 묘사한 이 해양생물의 정체는 바로 해파리다. 젤리처럼 흐물흐물하다 하여 영어로는 ‘젤리피시(jellyfish)’로 불리는 해파리 때문에 지난해 스웨덴에 있는 세계 최대 비등수형 원자로의 가동이 중단된 적이 있다. 발틱해에 위치한 1400㎿ 출력의 오스카샤만 원전의 냉각수 인입관을 해파리 떼가 막아버렸던 것. 1999년에는 필리핀의 화력발전소 냉각수 인입관을 막아 정전을 시킨 적이 있으며, 일본 원전도 정지된 적이 있다. 지난달 경주 월성원전의 냉각수 취수구에 투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잠수부도 해파리 방지시설의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해파리가 발전소 가동에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연어를 질식시키는가 하면 주 먹잇감인 청어를 다 먹어치워 철갑상어를 멸종 위기로 몰고 가는 녀석들도 있다. 또한 어선의 그물에 엉겨붙어 그물을 망가뜨리고, 양식장의 어패류에 독성을 지닌 자포를 쏘아 집단 폐사시키는 피해를 입힌다.

개체수 증가로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해파리 때문에 정부도 골치를 앓고 있다. 해파리 제거 어구 및 퇴치 장비를 개발하고, 천적인 쥐치 등을 이용한 퇴치 방안을 연구 중이다. 또 최근엔 중국과 해파리 공동 연구를 위한 MOU를 체결하는가 하면 급기야 해파리를 잡는 로봇까지 개발해 경남 마산만 인근 해역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그런데 창조경제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는 이 로봇에 대한 문제점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는 모양이다. 스크루의 지름이 너무 작아 대형 해파리는 물론 수심 1.5m 아래의 해파리는 퇴치가 불가능하단다.

해파리는 다세포생물 중에서 해면동물에 이어 진화가 가장 덜 된 원시생물이다. 하지만 성장메커니즘 등 해파리의 생태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최근 영국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해파리는 먹이를 찾아 움직일 때 ‘레비 워크’라는 특별한 수학적 패턴을 따른다고 한다. 또한 먹잇감이 많이 몰려 있는 지점에 대한 탐지 능력도 보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파리의 역습을 막기 위해선 이 원시적인 생물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부터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