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사태, 해결 기대는 난망… “행정장관 사퇴하라” VS “지칠 때까지 버틸 것”

입력 2014-10-03 04:40
홍콩 시민의 도심점거 시위가 2일 닷새째로 접어들었지만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시위대는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며 3일부터 정부기관을 점거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홍콩 경찰도 “심각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중국은 홍콩 시위 사태를 두고 미국에 내정간섭 말라고 경고했다.

◇‘행정장관 사퇴하라’ VS ‘지칠 때까지 버틴다’=대학생 3000여명은 렁 장관 집무실이 있는 정부청사 주변을 둘러싸고 밤샘 시위를 벌였다. 헬멧과 방패로 무장한 경찰 200여명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학생들과 대치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전날 홍콩 대학학생회 연합체인 홍콩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聯會·HKFS)는 렁 장관이 2일까지 사임하지 않으면 주요 정부건물을 점거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로마가톨릭교회 홍콩교구의 조지프 젠 추기경도 연합뉴스에 “현재로서는 렁 장관이 물러나는 것이 이번 위기의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과 홍콩의 입장은 단호하다. 홍콩 정부는 시위대에 “최대한 빨리 평화롭게 해산하라”고 촉구했으며, 스티브 휘 홍콩 경찰 대변인도 “불법적인 청사 포위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면에 게재한 기사에서 “중앙정부는 렁 장관을 충분히 신뢰하며 그의 업무 역시 매우 만족스럽게 여긴다”고 밝혔다. 사퇴는 없다는 얘기다. 다른 기관지 광명일보도홍콩 시위를 ‘무법천지식 도전’ ‘법치 유린’ 등의 표현을 써가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과 홍콩 정부는 시위대가 지칠 때까지 버티는 전략을 쓰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28일 최루탄을 쏘며 강경 진압에 나섰던 홍콩 경찰은 이후 도심을 시위대에 내주다시피 하고 있다. 최소한의 질서 유지조차 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시위 동력은 약해질 것이고 생계 등을 이유로 시위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질 것이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실제 이번 국경절 연휴 기간 홍콩 방문자 수가 전년 대비 22% 감소했다는 보도와 함께 시위대를 향해 계란을 투척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장샤오밍 홍콩 주재 중국연락판공실 주임이 1일 “태양은 평소처럼 떠오른다”고 말한 것도 ‘시간 끌기 전략’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왕이 “미국은 빠져라”…, 미·중 갈등조짐 속에 국제적 지지 움직임 확산=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동에 앞서 “홍콩 시민의 보편적인 참정권을 지지한다”며 시위대의 표현의 자유 존중을 홍콩 당국에 촉구했다. 왕 부장은 발끈했다. 그는 “홍콩 문제는 중국의 내부문제”라며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또 “모든 국가는 중국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은 국제 관계를 이끄는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왕 부장은 이후 수전 라이스 미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미·중 정상회담 의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예고 없이 합류해 “미국은 홍콩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홍콩 당국과 시위대 간의 입장차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런 가운데 전날 대만 타이베이시에서는 대만 전역의 34개 민간단체 회원들과 학생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영국 런던의 중국대사관 앞에도 노란 우산을 펼쳐 든 2000여명이 모였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