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 혐의를 받고 있는 3개 회사 중 2개사가 담합을 인정하고 자수를 했는데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SPC그룹(파리바게뜨) CJ푸드빌(뚜레쥬르) 등 프랜차이즈 제빵 3사의 이동통신사 제휴할인율 담합사건 얘기다. 공정위 전원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이들 회사의 담합 혐의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1997년 자진신고자 감경제도(리니언시)가 시행된 이후 합의서 등 뚜렷한 담합 물증을 제시하며 리니언시를 한 업체에 공정위가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2011년 비슷한 무혐의 결정이 있었지만 당시 리니언시 업체들은 구체적인 담합 물증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10년 동안 빵집에 무슨 일이?=90년대 프랜차이즈 제빵 시장을 선점한 것은 크라운베이커리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샤니’ ‘삼립’ 등을 거느린 전통의 강호 SPC그룹이 파리바게뜨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 주도권을 빼앗았다. 여기에 대기업인 CJ가 뚜레쥬르 상호로 시장에 뛰어들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삼국지’ 구도가 형성됐다. 3개 회사가 치열한 점유율 싸움과 함께 영토를 확장했고, 그럴수록 동네 빵집은 어려워졌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프랜차이즈 제빵 3사의 이동통신사 제휴할인제도다. 파리바게뜨-SK텔레콤, 뚜레쥬르-KT 등이 제휴를 맺어 이통통신사 고객을 대상으로 20∼40%씩 빵값을 할인해주는 것에 대해 동네빵집들은 “골목상권이 다 죽는다”며 반발했다.
동네빵집들은 2005년 6월 자신들의 사업자단체인 대한제과협회에 ‘이동통신사 제휴카드 폐지 및 생존권보호 제과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하고 이 제도 폐지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비대위의 1차 타깃은 제빵 3사가 아닌 이통사 1위 기업인 SK텔레콤이었다. 제휴할인 업무제휴를 맺는 데 있어 통신사가 사실상 ‘갑(甲)’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고 1차적으로 통신사에 압력을 가한 것이다. SK텔레콤으로부터 할인율 축소 약속을 받아낸 비대위는 SPC그룹에 이를 따를 것을 요구했다. 비대위 활동은 성공적이었다. 이듬해인 2006년 1월 26일 서울 서초동 대한제과협회 사무실에 비대위와 제빵 3사 대표가 모였다. 이들은 동네빵집과의 상생 차원에서 향후 제휴 할인율을 최대 10%로 제한하기로 합의하는 ‘공정거래 협약 이행각서’에 서명했다.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은 심사보고서에서 이 시기를 담합이 성립, 시작된 시기로 봤다.
지난해 10월까지 별 탈 없이 이어지던 이 합의는 뚜레쥬르가 SK텔레콤과 새로운 업무제휴를 맺고 할인율을 20%로 높이면서 깨졌다. 7년의 세월이 흐르고 담당자가 바뀌면서 그런 합의가 있었는지 깜박 잊었던 것이다. 당장 대한제과협회는 2006년 합의서를 언론에 노출시키면서 뚜레쥬르를 비판했다. 담합 증거가 만천하에 공개됐는데 공정위가 이를 가만히 지켜볼 리 만무했다. 공정위는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 조사를 눈치챈 SPC그룹은 재빠르게 리니언시를 했다. SPC가 과징금이 100% 면제되는 1순위 자격을 획득하자 CJ푸드빌이 뒤따라 리니언시 2순위 자격(과징금 50% 면제)을 얻었다. 2012년 크라운베이커리를 인수해 이런 담합행위가 있었는지 알지 못했던 크라운제과는 멀뚱멀뚱 눈만 뜨고 있었다.
리니언시를 바탕으로 공정위 조사는 일사천리로 조사됐다. 크라운베이커리가 지난해 9월 폐업한 상황에서 혐의를 받고 있는 2개사가 모두 “잘못했다”고 손을 드니 담합 입증은 이보다 쉬울 수 없었다.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은 이들 업체가 할인율을 낮추기로 담합한 것은 사실상의 가격인상행위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잠정 결론 내렸다. 또 골목상권 상생 명분으로 담합을 주도한 대한제과협회도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다.
◇무혐의 결정 둘러싼 4인4색 반응=노대래 공정위원장을 위원장으로 9명의 상임·비상임위원 합의제로 운영되는 공정위 전원위원회가 무혐의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담합 주체가 제빵 3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대위가 통신사와 제빵 3사에 각각 할인율 폐지 및 축소를 요구해 얻어낸 결과지 제빵 3사 간에는 담합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할인율을 최대 10%로 낮추는 중심 역할은 SK텔레콤 등 통신사에 있었다는 게 전원위원회의 판단이다. 만약 2006년 1월 제빵 3사와 비대위가 서명한 합의서에 통신 3사도 서명에 동참했다면 통신3사가 담합 주체로 처벌될 수 있었다.
이런 논리라면 통신 3사와 제빵 3사 간 합의를 이끌어낸 대한제과협회는 처벌을 받아야 했지만 협회도 면죄부를 받았다. 합의서에 비대위와 제빵 3사 간 서명을 했지만 서로 이해관계가 정반대인 양측이 합의한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골목상권 상생 명분을 지키기 위한 정무적 판단이 일부 작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담합으로 더 싸게 빵을 살 기회를 잃은 소비자들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전원위원회 관계자는 2일 “통신사 할인을 받아 빵을 사면 그만큼 포인트가 감소된다”며 “할인이 덜 된 만큼 포인트가 남아 있기 때문에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해명했다.
제빵 3사 표정은 제각각이다. 먼저 SPC그룹은 속으로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SPC는 전원회의에서 이렇다할 반박 없이 혐의를 모두 인정한다는 이색(?) 변론을 했다. 최대 3416억원의 과징금을 낼 위기였지만 리니언시 1순위로 100% 과징금 면제를 약속받았기 때문이다.
CJ푸드빌은 무혐의 결정에 고무됐다. 전원회의에서 동네빵집과의 상생을 위해 합의한 것으로 담합이 아니라는 논리로 사실상 무혐의를 이끌어냈다고 자부하고 있다. CJ푸드빌은 혐의가 인정됐을 경우 50%를 감면받는다 해도 최대 130억원의 과징금을 낼 위기도 벗어났다. 최근 3년간 당기순이익이 적자인 상황에서 감당하기 힘든 액수였다.
크라운제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012년 크라운베이커리를 합병했지만 합병 이전 행위에 대한 책임이 귀속되면서 최대 51억원의 과징금을 덤터기 쓸 뻔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크라운베이커리는 지난해 9월 폐업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담합기간 7년7개월(2006년 3월∼2013년 10월), 담합 관련 매출액만 3조7000억원의 대형 담합사건은 이렇게 조용히 묻혔다. 소비자들 역시 자신들이 더 싸게 빵을 살 기회가 있었는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조용히 묻힌 빵값 담합… 그뒤엔 ‘묘한 공정委’가
입력 2014-10-03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