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신흥국 엑소더스” 공포… 파랗게 질린 코스피

입력 2014-10-03 04:01

지난달 1일부터 2일까지 21거래일간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유가증권시장(코스피시장)에서 빼낸 금액은 1조2109억1300만원에 이른다. 달러화 강세로 미국 자산의 가치가 부각되자 신흥국 자산에 대해 이뤄지던 캐리트레이드(금리가 낮은 통화로 자금을 조달, 금리가 높은 나라에 투자하는 거래)가 청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경환 경제팀의 출범과 함께 박스권 상단을 뚫을 기세였던 코스피지수는 2일 어느덧 1970선으로 주저앉았다.

◇비싼 달러에 외국인 ‘엑소더스’=‘ATM코리아’를 만든 불안요인은 미국 경기회복에 따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조기 인상 우려다. 연준은 2012년부터 시작한 제3차 양적완화 정책(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해 시중에 유동성을 푸는 작업)을 이달 종료할 예정이다. 그간 시장에서는 연준이 여전히 유예기간을 가질 것이라는 ‘비둘기파’ 전망이 많았지만 이젠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으로 출구전략이 시작될 것이라는 ‘매파’적 전망이 훨씬 힘을 얻는 상황이다.

세계시장에 풀린 달러의 양이 줄어들면 달러의 가치가 오르고 신흥국의 자산가치는 떨어진다. 금융투자업계는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일단 캐리트레이드가 시작되면 자산 투매가 가속화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일 외국인 순매도는 1970억원대였지만 이날은 3860억원을 넘어섰다. NH농협증권 이아람 연구원은 “연준 테이퍼링 종료를 앞둔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다”며 “캐리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외국인 매도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최근 디플레이션을 사실상 시인해 유로존 경기둔화 걱정이 재차 불거진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악재다. 유럽 지역에 가해지는 통화정책 완화 압력은 달러 강세를 촉발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홍콩 지역의 민주화 시위가 지정학적 리스크를 키운 것도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 투자심리 악화 요인으로 꼽힌다. 시위의 장기화가 중국의 성장 둔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투자자가 많다. 부국증권 김성환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시장을 둘러싼 불리한 환경을 고려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시에 순매수로 전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평가했다.

◇펀더멘털도 할 말 없다=그렇다고 국내 증시가 대외 악재에만 억울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내적으로는 주식시장을 구성하는 기업들의 3분기 실적 우려, 최경환 노믹스의 동력 약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투자심리 위축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필두로 시가총액 상위 대형주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며 비관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일단 7일 예정된 삼성전자의 실적 가이던스(잠정실적) 발표를 앞두고 투자자들의 긴장감이 심하다. ‘대장주’의 어닝쇼크는 항상 코스피지수의 급락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이미 유안타증권(3조9500억원) 대신증권(3조9470억원) LIG투자증권(3조9290억원) 등은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4조원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우리투자증권과 교보증권, 아이엠투자증권 등도 최근 이 수치를 4조원대로 내려잡았다.

배당 확대 기대감 등 정부 정책의 효과가 점점 떨어진 영향을 크게 평가하는 전문가도 많다. 우리투자증권 김병연 연구원은 “배당 확대 기대감으로 유입된 자금이 법안 통과지연 등 기대감이 약화되며 코스피지수의 연간 수익률이 마이너스 전환했다”고 분석했다. 아이엠투자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8월까지는 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에 대한 기대감이 유지됐지만 지난달부터 힘이 떨어지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코스피지수가 연말까지 별다른 호재 없이 하락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코스피가 급락한 현재를 저가 매수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바닥론’ 분석도 여전하다. 삼성증권은 “현재 국면은 조정 본격화보다는 바닥에 근접해가고 있다”며 “현 시점은 매수타이밍”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증권은 미국의 경기 모멘텀이 정점을 지났기 때문에 앞으로 달러화의 추가 강세는 제한적일 것이고, 원화 가치 하락 속도도 느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