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사퇴] 외골수 계파주의… ‘모래알 정당’ 민낯 보였다

입력 2014-10-03 03:14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들이 2일 국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재인 정세균 비대위원, 문희상 위원장, 박지원 비대위원. 김지훈 기자

새정치민주연합이 박영선 원내대표의 중도 하차로 구조적인 한계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박 원내대표 사퇴는 본인의 자질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계파주의와 소통 부재 등 취약한 당 시스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계파가 ‘몸통(당)을 흔드는 꼬리가 됐다’는 비판이다. 계파색이 옅은 박 원내대표는 지난 5월 원내대표 선거에서 초선·486 등 강경파의 지지로 당선됐다. 이후 당 비상대책위원장에까지 추대되며 당의 비상대권을 거머쥔 유일한 지도부가 됐다.

하지만 허울뿐이었다. 박 원내대표를 지지했던 그룹이 돌아서자, 리더십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비대위원장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고 원내대표직까지 중도 하차했다. 자기 계파가 없는 리더가 겪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었던 셈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의원은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안을 철저히 계파적으로 해석하고 자기 계파의 이익에 반할 경우 흔들고 보는 뿌리 깊은 계파주의가 문제”라며 “당에 절대 오너(owner·주인)가 없는 상황에서 잠재적 경쟁자를 사정없이 공격한다”고 진단했다. 이 의원은 “마치 로마시대 콜로세움의 검투사와 맹수 사이의 싸움을 하는 격”이라고도 했다.

실제 박 원내대표 퇴진 요구에 앞장섰던 강경파들은 세월호 특별법 정국에서 일관된 원칙이 없었다. ‘유가족 동의가 먼저’라며 들고 일어나 2차 합의를 무산시킨 친노(친노무현)·강경파들은 유가족이 똑같이 거부한 3차 합의에 대해서는 일제히 침묵했다.

문재인 비대위원도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유가족 동의를 강조해 왔다. 2차 합의 직후엔 광화문광장에서 9일간 단식하며 강경투쟁 선봉에 섰다. 하지만 본인이 비대위원이 되고 나자, 3차 합의에 대해 “패배를 인정한다. 어떤 비판도 달게 받겠다(2일 비대위 회의)”고 했다. 스스로 지도부에 소속됐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의원들이 당의 지도부는 우습게 여기고 계파 보스 눈치만 본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수도권 재선 의원은 “진보진영에서 들어온 비례대표 의원들이 지도부와 당을 욕하는 게 일상화가 됐다”며 “거기에 계파주의까지 겹쳐지며 비례대표가 계파 선봉대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에는 리더십은 물론 팔로어십(followership)도 찾기 어렵다. 박 원내대표는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자 ‘탈당 소동’까지 벌이며 당을 상대로 ‘벼랑 끝 전술’을 펼쳤다. 강경파 의원들은 당 대표 실종 사태에서도 ‘박영선 물러가라’는 모임을 이어갔다. 지도부의 한 의원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힘만 합치면 된다. 내부가 갈라지면 상대방이 그 균열의 틈을 노린다”며 “어떤 계파든 지도부의 결정을 따라주고 동지애로 지켜주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아쉬워했다. 위기상황에서 리더를 중심으로 뭉치지 못하고 중구난방이다 보니 전략적 대응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당내 불통도 위험 수위다. 소통이 사라진 대신 세 과시용 연판장이 난무했다. 박 원내대표가 중앙대 이상돈 명예교수를 외부인사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하자 54명의 의원이 “영입을 중단하라”고 연판장을 돌렸다. 7·30재보선과 세월호 협상과정에서도 연판장은 일상이었다. 한 초선의원은 “지도부에 내부적으로 충분히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음에도 자기 의견이 관철 안 됐다고 기자회견을 하고 연판장을 돌리는 문화가 우리 당을 망하게 하고 있다”며 “그런 모습 때문에 국민에게 ‘콩가루 정당’이라는 인식을 주게 됐다”고 말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