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재만인데” 사칭… 대기업에 ‘셀프 취업’

입력 2014-10-03 03:40

“나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재만입니다.”

대우건설 박영식 사장은 지난해 7월초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자신을 청와대 이재만 비서관이라고 소개한 인물은 “사람을 보낼 테니 취업을 시켜주면 좋겠다. 내일 오후 3시에 보내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사장실을 찾아온 50대 남성은 “이 비서관이 보내서 왔다. 대우건설에서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신학대 학·석사, 한민대 겸임교수 등 학력과 경력이 적힌 이력서도 제출했다. 그러나 박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던 인물과 사장실로 찾아온 남성은 동일인물이었다. 이 비서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1998년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15년 넘게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최측근 인사다. 최근 야당은 “이 비서관이 포함된 ‘만만회’라는 비선라인이 인사를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우건설 측은 한 달 뒤 조씨를 부장급 현장관리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조씨는 지난 7월 31일까지 근무했다. 대우건설은 조씨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고 1년 가까이 월급을 줬다.

검찰 조사 결과 인사청탁 전화와 조씨의 경력은 모두 가짜였다. 일용직으로 살아가던 조모(52)씨는 이 비서관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취업이 어렵게 되자 범행을 계획했다고 한다. 굴지의 건설회사가 ‘이재만’이라는 이름에 속아 넘어간 셈이다.

조씨는 1년여간 서울과 경기 지역의 분양사무소에서 근무했지만 출퇴근 시간을 지키지 않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해고됐다. 대우건설을 나온 조씨는 지난 8월 18일 같은 수법으로 KT 황창규 회장에게 접근했다. 조씨는 이 비서관의 휴대전화 번호와 뒷자리 번호 네 자리가 같은 휴대전화를 개통한 뒤 황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 비서관을 사칭하며 인사청탁을 했다. 다음날 황 사장을 만난 조씨는 “10여년 전부터 VIP(박 대통령)를 도와 비선에서 활동했다. VIP가 우리 집에 방문한 적도 있고 지금도 한 달에 한두 차례 면담한다”며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지어냈다.

하지만 조씨를 수상하게 여긴 황 회장이 청와대에 신분 확인을 요청하는 바람에 조씨의 사기행각은 들통났다. 청와대 신고를 받은 경찰은 수사에 착수한 뒤 조씨를 구속해 검찰로 송치했다.

조씨는 사기 전과 2범으로 확인됐다. 도청 비서실, 현대자동차 등에 아는 사람이 있다며 취업을 시켜주겠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아 챙기는 식이었다. 지난해 1월 전주지법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같은 해 4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임관혁)는 유예기간 중 범행을 저지른 조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2일 밝혔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