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정현수] “헌재, 사회 통합 기여하지만 갈등 해결의 주체는 아니다”

입력 2014-10-03 03:36

지난달 29일부터 이틀간 열렸던 세계헌법재판회의 제3차 총회의 주제는 ‘헌법재판과 사회통합’이었다. 주제에서 드러나듯이 세계 각국의 참석자들은 헌법재판소가 사회갈등 해소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런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헌재가 사회갈등 문제에 주도적으로 나서서는 안 된다”는 ‘소수의견’을 낸 국가들이다.

네덜란드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이 소수의견을 냈다. 이들은 헌재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해석했다. “헌재가 사회통합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헌재의 기능이 과장돼서도 안 된다”는 게 요지다. 헌재의 역할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등 위헌성이 있는 법률(부정적 입법)을 헌법적 기준으로 판단해 제거하는 데 있다. 법률적 영역을 벗어난 사회갈등 문제 해결은 입법의 주체인 정치권 혹은 행정부의 몫이라는 얘기다. 이들의 주장은 이번 총회에서 채택된 ‘서울 코뮈니케’ 본문에 ‘헌재의 권한 내에서’ 헌법적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는 문구 형태로 반영됐다.

이번 총회를 개최하고 주제를 직접 선정한 헌재 측 관계자는 “선진국들이 자꾸 ‘재’를 뿌리고 있다”고 우스개로 말했다. 그러나 사회갈등에 개입할 수 있는 정치와 사법의 영역을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에 대한 지적은 웃고 넘길 문제만은 아니다. 최근 법조계는 정치 영역에서 해결돼야 할 사건들을 고소·고발의 형태로 넘겨받아 홍역을 앓고 있다. 지난해 정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발언 사건’과 정치인들의 각종 명예훼손 사건들이 대표적이다. 헌재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건과 신행정수도 위헌사건 등으로 정쟁의 중심에 서야 했다.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2일 “법원과 검찰, 헌재는 법률적 테두리 안에서 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하는 기능을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결론을 내려도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민감한 정치적 사안들이 법조계로 넘어와 갈등은 갈등대로 해결되지 않고, 법원·검찰·헌재에 대한 신뢰는 실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인과 법조인들은 이번 총회에서 나온 서유럽 국가들의 소수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현수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