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얀시 “교회는 사회 정화시키는 곳 아닌 예배하는 곳”

입력 2014-10-04 00:59
전 세계 복음주의의 대표적 지성이자 영성 작가인 필립 얀시(65)가 오는 9일 서울 서대문구 아현성결교회(조원근 목사)에서 열리는 ‘국민일보 창간 26주년, 흐르는 생수의 강 창립 기념 콘퍼런스’ 주강사로 내한한다. 얀시는 탁월한 비유와 생명력 넘치는 글쓰기로 하나님의 은혜를 비롯해 교회와 고통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뤄 왔다. 방한에 앞서 그가 30년간 천착해 온 주제를 정리했다.

그는 누구인가

필립 얀시는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근본주의 계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에게 하나님은 ‘험악한 상관’이었다. 지옥불과 유황은 당시 그가 다녔던 교회의 단골 설교 내용이었다. 롤러스케이트를 타거나 볼링장, 극장에 출입하면 믿음 없는 인간으로 정죄를 받았다.

그런 그에게 독서는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이었다. 그는 책을 집어삼키듯 읽었고 이를 통해 기독교 진리와 교회생활에 대해 근본적 물음을 던졌다. 일종의 배반의식이 그를 사로잡았다. 어떤 책을 읽어도 교회와 연결시켰고 자신이 배웠던 신앙에 결부시켰다. 이 과정을 통해 얀시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자기중심의 시각에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태도를 전환하게 됐다. 회의론자에서 옹호론자로, 구경꾼에서 참여자로 변한 것이다.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등은 그의 지적 여행 초창기에 나온 저작들이다. 그는 아무도 대놓고 묻지 않았던 하나님의 공평하심과 침묵의 문제에 솔직한 질문을 던지며 신학적 해답을 찾아 나선다.

기독교 작가로서의 본격 도약은 의료선교사이자 손 치료, 한센병 전문의인 폴 브랜드를 만나면서다. 얀시는 그와 함께 ‘육체 속에 감추어진 영성’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 ‘고통이라는 선물’ 등을 공저하며 고통이라는 비밀의 세계에 입문한다.

얀시는 이후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정면으로 돌파한다.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등은 얀시만의 언어로 된 기독론이다. 그는 왕성한 저작 활동을 통해 일약 세계 복음주의권의 저명한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그의 책들은 35개국 언어로 번역됐고 2000만권 이상이 출간됐다.

얀시는 홍콩과 대만 등 중화권 기독교인들에게도 매우 인기 있는 작가다. 2004년 대만 콘퍼런스에는 1만명이 참석해 얀시의 강연을 들을 정도였다. 얀시의 대부분 서적은 중국어판으로도 번역됐다. 국내에서는 최근까지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 ‘하나님, 은혜가 사라졌어요’ 등이 출간됐다.

얀시는 시카고를 중심으로 저널리스트로서 20년 넘게 일했다. 초기엔 청소년 잡지인 ‘캠퍼스 라이프’의 편집자로 시작해 ‘리더스 다이제스트’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내셔널 와일드 라이프’ 등을 거쳐 미국 복음주의 대표 잡지인 ‘크리스채너티투데이’ 편집인을 역임했다. 저널리스트로서 그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밀러드 풀러 해비타트 창립자, 데임 시슬리 사운더스 현대 호스피스운동 창시자 등을 인터뷰했다. 얀시는 인터뷰에서 유명인들의 경험을 불러냈고 독자들의 정서를 자극했다.

그에 따르면 글쓰기는 ‘이 세상과 연결하기 위한 자신의 내면적 행동’이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philipyancey.com)에서 글쓰기를 ‘순례’로 표현했으며 ‘염려했던 것들에 대한 연구이자 탐험’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글쓰기에는 치밀함과 아이러니, 정직한 의심 등이 돋보인다.

얀시는 여러 스승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책 ‘내 영혼의 스승들’에서는 이들 인물을 상세히 소개한다. 마틴 루서 킹을 비롯해 G K 체스터톤, 폴 브랜드, 로버트 콜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마하트마 간디, 에버레트 쿠프, 존 던, 애니 딜라드, 프레드릭 부흐너, 엔도 슈사쿠, 헨리 나우웬 등이다.

얀시에 따르면 교회는 사회를 정화시키는 곳도, 도덕적 기능을 수행하는 곳도 아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떠날 때 우리의 질문은 ‘무엇을 얻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셨는가’이다. 얀시는 13년간 일리노이주 시카고 도심의 라살스트리트교회를 다녔다. 그는 거기서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배웠다.



교회에는 ‘행동하는 은혜’ 존재

그는 이 교회에서 유년기 시절 자신에게 부재했던 은혜를 발견한다. 세상이 경쟁과 판단, 서열을 추구하는 ‘비은혜’의 세계라면 교회는 ‘행동하는 은혜’가 존재하는 곳임을 깨닫는 것이다. 은혜는 흠 많은 인간들 속에서 희망적 징후가 된다.

얀시는 교회를 다양한 은유적 표현으로 설명했다. ‘12단계 모임(알코올 중독자 모임 회원들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운전면허 관리공단 접수처(각양각색 사람이 모인다)’ ‘응급진료소(상처를 가지고 가는 곳)’ ‘지하철(낮은 자나 높은 자 모두 이용한다)’ ‘가족(기관은 신분과 계급이 중시되지만 가족은 밉든 싫든 사랑의 관계다)’ ‘선수 탈의실(경기장이 아닌 환호와 감사가 있는 곳)’ 등이다.



고통에 동참하시는 하나님

고통의 문제는 얀시가 평생 추구해온 주제이다. 그는 쓰나미와 토네이도, 지진 등의 자연재해와 충격적인 사건 사고 등을 통해 자극을 받았다. 그러면서 “하나님,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묻는다.

고통과 고난에 대한 그의 입장은 고통이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은 고난이 존재하도록 허용하시며 고난은 그분의 확성기로서 역할을 다한다. 그렇지만 그분이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 적극적으로 고통을 가하신다고는 믿지 않는다. 고통과 고난은 우리 행성의 일부분이며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신약성경에는 덜 고통스럽고 평안하게 살기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가 될 말은 거의 없다. 야고보와 베드로의 서신들, 히브리서는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 받을 준비를 하라고 권고한다.

그는 “성경 어디에서도 그리스도인이 비기독교인보다 더 쉽고 더 유쾌하고, 더 안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다”고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고통 안에 계신다. 하나님은 위험한 세상의 힘든 일들을 막아주시는 대신 우리 모두와 그것들에 동참하심으로써 악을 선으로 바꾸신다.



복음의 핵심, 은혜

얀시는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은혜’를 강조한다. 2009년 방한했던 그는 당시 세미나에서 “세상은 정의와 공평이란 잣대, 다양한 규칙으로 움직이지만 예수와 하나님 나라는 은혜로 움직인다”고 역설하며 은혜의 독특함을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은혜란 명성과 권력, 부를 좇는 세상 풍조와는 정반대다. 은혜는 산상수훈(마 5∼7장)에 등장하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으며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가 복된 자’라는 선언이다. 은혜는 또 탕자의 비유가 보여주는 것처럼 집 밖으로 나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대표작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서 얀시는 “왕이 잘못하면 신하가 벌을 받는 것과 달리 기독교 신학은 종이 잘못하면 왕이 벌을 받는다”면서 “은혜란 주는 이가 친히 값을 치렀기에 값이 없다”고 말한다. 불가항력적으로 타오르는 사랑의 힘에 무너지는 하나님이야말로 복음의 핵심이다(필립 얀시 초청 콘퍼런스 등록 : 031-789-3515,3518·wadiz.kr/yancey).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