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는 모두가 느끼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다.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 사는 게 점점 더 힘들다는 것, 노동에 기쁨이 없다는 것, 그리고 외롭다는 것, 무엇보다 여기서 탈출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 그래서 다들 힘겹게 버티는 중이다. 이것이 삶인지 생존인지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시집 분량의 작은 에세이집에서 이반 일리치는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우울을 ‘현대화된 가난’으로 설명한다.
“‘현대화된 가난’은 과도한 시장 의존이 어느 한계점을 지나는 순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가난은 산업 생산성이 가져다준 풍요에 기대어 살면서 삶의 능력이 잘려나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풍요 속의 절망이다. 이 가난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창조적으로 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데 필요한 자유와 능력을 빼앗긴다. 그리고 플러그처럼 시장에 꽂혀 평생을 생존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게 된다.”
이 책은 1970년대 후반에 쓰여 졌다. 그렇지만 지금 읽어도 생생하고 적절하다. 일리치가 이 시대에 끊임없이 불려나오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이자 신학자인 일리치는 성장과 발전, 현대화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로 유명하다. 그를 ‘20세기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로 평가하는 것도 그가 산업사회 이전의 유산인 우정이나 공생, 절제, 자급 등과 같은 무기를 들고 진보와 보수 모두가 공유하는 성장담론과 맞섰기 때문이다.
책에는 비수처럼 짧고 날카로운 통찰이 곳곳에서 반짝거린다.
“가족의 건강을 보살피던 가정은 위생적인 아파트로 바뀌었다. 이곳에서는 아기가 태어날 수도 없고, 아플 수도 없으며, 고귀한 죽음을 맞을 수도 없다. 삶의 고비마다 도움을 주던 이웃도 없다.”
“발전이나 현대화가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면 그때까지만 해도 시장 경제에서 배제되어도 생존할 수 있었던 이들은 구매 시스템으로 끌려 들어가 물건을 사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게 체계적으로 강요를 당한다. 이때부터 그들은 시장에서 나오는 찌꺼기를 가져다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고,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일리치의 눈에는 거짓이나 환상이고 순응의 결과물이다. 그는 “이제는 삶 그 자체가 세계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 소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되었”으며, “세계 곳곳에서 청중이자 고객, 소비자의 특징인 훈련된 순응이 인간의 내면을 걷잡을 수 없이 잠식한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상품에 더 의존할 것인가, 덜 의존할 것인가를 자유로운 삶의 핵심적인 문제로 제기한다. 허택 옮김.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삶의 능력이 잘려나간 사람들이 겪는 풍요 속 절망
입력 2014-10-03 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