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망경대산은 가을맞이가 한창이었다. 잣나무는 소담스런 잣송이를 길가에 떨어뜨려 놓았다. 쌀알보다 작은 들국화는 꽃망울을 톡톡 터트리는 중이었다. 드넓은 고랭지배추밭은 수확을 막 끝냈다. 기온인지 토양 탓인지 꽃이 피지 않는다는 벚나무 군락은 울긋불긋한 잎들을 추수 중이었다. 아직은 푸릇함을 간직한 낙엽송이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금빛 비를 쏟아내면 비로소 가을이 시작된다.
◇MTB 코스로도 트레킹 길로도 그만= 망경대산(望京臺山)은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들은 추익환이 이곳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단종에 대한 충심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망경대산은 서쪽과 남쪽 능선을 따라 등산로도 잘 나 있지만 산 중턱에 평탄한 임도길 역시 잘 나 있다. 임도길은 MTB코스로도 유명한데 그 MTB코스를 바탕으로 망경대산 서쪽 능선을 중심으로 중턱에 난 임도를 한바퀴 빙 도는 코스는 트레킹을 하기에도 그만이다. 나무 그늘이 서늘하게 드리워 한낮에도 무난하게 걷기 좋다.
출발은 망경산사다. 작고 아담한 산사를 기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트레킹 막바지에 정상 바로 아래 쉼터가 있는데 정상을 다녀온다면 12㎞ 남짓, 정상을 다녀오지 않고 그냥 패스할 경우 10㎞ 남짓한 거리가 된다.
산 너머로 버스가 다녔던 임도라 차 두 대까지 넉넉히 지나갈 정도로 널찍하다. 길 양쪽으로 큰 나무가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듯 그늘을 넉넉하게 드리웠다. 완만한 경사의 임도를 2㎞ 남짓 걸으면 자령치다. 이 길에서 유일하게 의자 3개가 놓인 쉼터다. 망경대산 정상을 바로 치고 오르는 길이 있지만 궁장동삼거리로 방향을 잡는다. 자령치까지 슬쩍 솟았던 길이 이후부터 계속 낮아진다.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재미= 간혹 임도 옆으로 전망이 터지긴 하지만 외길을 따라 비슷한 풍경이 이어진다. 고즈넉한 산의 청량함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또 쏴아아 산바람이 나뭇잎을 헤집는 소리, 찌르르 귀뚤귀뚤 규칙적으로 박자 쪼개는 풀벌레들의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동행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다. 망경대산 등산로였다면 대화를 위해선 가파른 호흡을 몰아쉬게 했을 테다. 한결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기엔 평탄한 임도길이 제격이다.
고랭지밭 삼거리부터 드넓은 궁장동 배추밭 사이를 거닐게 된다. 위쪽은 수확이 끝났지만 아래쪽은 아직 푸른 꽃 같은 배추들이 소복하다. 상품성이 떨어져 밭에 남겨진 배추 속을 뜯어 와그작 씹으니 단맛이 입 속에 퍼진다. 목마름까지 달래주니 이만한 간식이 따로 없다. 초여름엔 보석 같은 열매를 내놓는 딸기 덩굴을 발견할 수 있고 가을엔 다래도 맛 볼 수 있다.
트레킹 막바지에 정상에 오를 기회가 생긴다. 정상까지 300m. 꽤나 급경사긴 하지만 정상석 앞에서 ‘인증샷’ 남기는 취미가 있다면 포기하기 아쉽다. 정상에 다녀오면 이제 내리막뿐이다. 만경사 사거리를 지나 늘어선 돌탑이 트레킹이 끝나감을 알린다. 시멘트 포장로가 썩 걷기 좋진 않지만 만경산사까지 낙엽송이 멋지게 늘어서 마지막까지 눈이 호강스럽다.
김 난 쿠키뉴스 기자 nan@kukimedia.co.kr
<잘 곳과 볼거리>
영월군에서 운영하는 망경대산자연휴양림은 2012년에 개장해 시설이 깨끗하고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계곡 옆에 숲 속의 집이 5동 마련돼 있다. 6명 정원이지만 방이 세 개에 거실까지 널찍하다. 앞쪽에 바비큐를 위한 데크와 시설이 마련돼 있다. 숲속의 집은 비수기 평일 8만원, 주말·공휴일 12만원, 성수기는 15만원이다.
해학과 풍자의 시선(詩仙) 김삿갓의 시대정신과 문화예술혼을 추모하기 위한 김삿갓 문화제가 오는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김삿갓유적지 일원에서 열린다. 행사장에서는 개막행사와 각종 공연을 비롯해 추모제, 고유제, 헌다례 등의 추모행사와, 전국 시낭송 경연대회와 함께 체험 및 전시 행사가 다채롭게 열린다. 부대행사로 김삿갓 해학의 길 걷기 MTB 대회, 강원도 등반대회, 조신시대과거제 재현 등도 예정돼 있다.
김 난 쿠키뉴스 기자 nan@kukimedia.co.kr
[난기자의 워크홀릭] 가을은 숲길에 내려앉았고 나그네는 예서 발길 멈추네… 영월 망경대산
입력 2014-10-02 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