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억원이라는 건조비용을 쏟아붓고도 세월호 참사 현장에 투입조차 되지 못한 통영함 납품 비리에는 해군사관학교 출신 고위급 군 인사들이 여기저기 얽히고설켜 있다. 그동안 군의 비위 먹이사슬이 수차례 드러났지만, 인맥을 동원한 ‘군피아’ 관행은 여전했다.
◇그물망처럼 얽힌 군과 업체=검찰이 통영함 납품 비리 혐의로 1일 구속한 오모 전 대령은 해사 33기다. 감사원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지만 현직 총장 신분이라 수사 의뢰 대상에서 빠진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은 해사 32기다. 문제의 통영함 발전기·엔진 관급을 결정했던 오 전 대령이 방위사업청 상륙함사업팀장을 맡고 있을 때 황 총장은 함정사업부장이었다.
원가 2억원짜리 선체고정음파탐지기(HMS)를 41억원에 판 H사의 부사장도 해사 35기 예비역 해군 대령이다. 이 회사에는 예비역 해군 준위도 재직 중이다. 해사를 중심으로 한 군 인맥이 통영함 납품 비리 문제 곳곳에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셈이다.
군 인맥이 여기저기 얽히면서 부적절한 ‘갑(甲)질’도 벌어졌다. 통영함 건조업체인 대우조선해양은 HMS를 시운전하면서 납품 업체인 H사에 작동 요원과 기술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H사는 ‘작동 요원이 해외 프리랜서다’ ‘출장을 나갔다’는 등의 이유로 이 요청을 거절했다. 납품업체가 건조업체의 요청을 무시하는 ‘갑질’을 한 것이다. 군 고위 간부 출신들이 납품업체와 건조업체에 두루 포진하면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서로 봐주는 문화도 한몫했다.
박근혜정부 초대 국방부 장관 후보였던 김병관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도 전역 후 무기중개업체에서 일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낙마했다.
◇군피아, 치료 안 되는 고질병=군납 비리는 잊을 만하면 터지고 끊임없이 발생한다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붙어다닐 정도로 고착화됐다. 비리는 무기·군용품·식품·자재·기밀 등 종류와 범위를 가리지 않았다.
국방기술품질원은 지난 3월 군납업체 241곳에서 공인인증성적서가 2749건 위·변조된 사실을 적발해 관련 업체를 검찰에 고발했다. 우리 군이 ‘명품’이라며 자랑한 차세대 첨단 무기 K-2 흑표전차(146건), K-9 자주포(197건), K-21 전투장갑차(268건)의 부품평가서까지 모두 위·변조된 것으로 나타났다. 군 주력 전투기인 KF-16, 수리온 기동헬기 등도 포함됐지만 이들 업체는 지난 7년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울산지검은 올 초 해군의 차기 호위함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을 수입산 대신 공구상가에서 만든 ‘짝퉁’ 제품으로 납품한 혐의로 방산부품 제조업체 운영자 이모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 업체는 조타기에 들어가는 가변용량펌프와 레벨스위치를 비규격품으로 납품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STX엔진과 협력업체들이 2010년 이지스함 등 대형 함정에 사용되는 해군 위성통신장비 납품 과정에서 인건비 등 단가를 부풀려 98억원을 챙긴 사실을 적발했다.
군피아 비리는 군사기밀 유출까지 광범위하게 번졌다. 2002년 F-X 1차사업 당시 공군 대령이 방산업체에 F-X사업 계획을 몰래 전달했다 적발됐고 2004년에는 해군전력증강사업 과정에서 해군 소령이 방산업체에 3급 군 기밀을 빼돌렸다 덜미가 잡혔다. 2009년에는 공군 예비역 소장이 한국형 전투기 개발(KF-X) 사업계획을 스웨덴 방산업체인 사브에 넘긴 사실이 드러났고, 2011년에는 공군참모총장이 공군 전력증강사업 관련 기밀을 미국 록히드마틴에 넘겨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임성수 전웅빈 기자 joylss@kmib.co.kr
[통영함 발전기·엔진 납품 비리] 얽히고설킨 海士출신‘검은 인맥’…좋은 게 좋다式 봐주기 문화까지
입력 2014-10-02 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