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62) 동양그룹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1일 ‘동양사태’와 관련해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나와 혼쭐이 났다. 의원들이 법정관리 신청 직후 개인금고에서 현금 6억원과 패물을 인출한 것을 추궁하자 이 부회장은 “사죄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그런데 이 부회장은 바로 그 다음날 서울 종로구 동양증권 사옥에 보관 중이던 일본 조각가 야요이 쿠사마 작품 2점(1억3000만원)을 직접 들고 나와 서미갤러리 대표 홍송원(61)씨에게 전달했다. 같은 달 3일에는 서미갤러리 직원까지 동원해 영국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 작품 2점(3억5000만원)을 빼내 홍씨 소유 창고로 옮겼다.
이 부회장이 압류를 피하려고 지난 3월까지 빼돌린 그림, 고가구 등은 400여점에 달한다. 동양증권과 동양네트웍스 사옥, 이 부회장의 성북동 자택과 가회동 한옥, 자사 소유 골프장 등에 있던 미술품들이 최소 7차례에 걸쳐 경기도 일대 창고로 옮겨졌다. 이 가운데 미술품 13점은 이미 국내외에서 47억9000만원에 판매됐다. 미술품 반출·매각 과정에는 이 부회장의 친구이자 ‘재벌가 미술상’으로 불리는 홍씨가 적극 가담했다. 압류가 예상되는 미술품을 숨기려는 이 부회장과 심각한 경영난으로 돈이 필요했던 홍씨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들이 해외에 판매한 미술품은 인도 태생의 세계적 설치작가 아니쉬 카푸어의 ‘Blood mirror’(90만 달러), 이탈리아 작가 알리기에로 보에티의 ‘Mappa’(80만 달러), 미국 팝 아티스트 웨인 티보의 ‘Candy Sticks’(7억원)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데미안 허스트 작품들과 서양화가 정상화(82)의 ‘무제’(1억7000만원) 등이 팔렸다. 매각 전 압수된 미술품에는 미국 조각가 클래스 올덴버그의 ‘담배꽁초 습작’(2억원),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1억원) 등이 포함됐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이선봉)는 1일 강제집행 면탈 혐의로 이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하고 홍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빼돌린 미술품 중 재산적 가치가 큰 107점에 대해서만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압수한 현금(5억9000만원)과 미술품 400여점을 동양사태 피해 회복에 사용하기로 하고 법원 파산부와 협의해 모두 가압류 조치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동양 이혜경 부회장 행적 보니… 국감장서 “사죄” 이튿날부터 미술품 빼돌렸다
입력 2014-10-02 0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