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이혜경 부회장 행적 보니… 국감장서 “사죄” 이튿날부터 미술품 빼돌렸다

입력 2014-10-02 03:51
동양그룹 사태로 재산이 가압류되자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과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가 몰래 매각한 미술 작품들. 미국 팝 아티스트 웨인 티보의 ‘Candy Sticks’(7억원·위)와 미국 극사실주의 작가 찰스 벨의 ‘Gumball ⅸ’(2억5000만원). 서울중앙지검 제공

이혜경(62) 동양그룹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1일 ‘동양사태’와 관련해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나와 혼쭐이 났다. 의원들이 법정관리 신청 직후 개인금고에서 현금 6억원과 패물을 인출한 것을 추궁하자 이 부회장은 “사죄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그런데 이 부회장은 바로 그 다음날 서울 종로구 동양증권 사옥에 보관 중이던 일본 조각가 야요이 쿠사마 작품 2점(1억3000만원)을 직접 들고 나와 서미갤러리 대표 홍송원(61)씨에게 전달했다. 같은 달 3일에는 서미갤러리 직원까지 동원해 영국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 작품 2점(3억5000만원)을 빼내 홍씨 소유 창고로 옮겼다.

이 부회장이 압류를 피하려고 지난 3월까지 빼돌린 그림, 고가구 등은 400여점에 달한다. 동양증권과 동양네트웍스 사옥, 이 부회장의 성북동 자택과 가회동 한옥, 자사 소유 골프장 등에 있던 미술품들이 최소 7차례에 걸쳐 경기도 일대 창고로 옮겨졌다. 이 가운데 미술품 13점은 이미 국내외에서 47억9000만원에 판매됐다. 미술품 반출·매각 과정에는 이 부회장의 친구이자 ‘재벌가 미술상’으로 불리는 홍씨가 적극 가담했다. 압류가 예상되는 미술품을 숨기려는 이 부회장과 심각한 경영난으로 돈이 필요했던 홍씨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들이 해외에 판매한 미술품은 인도 태생의 세계적 설치작가 아니쉬 카푸어의 ‘Blood mirror’(90만 달러), 이탈리아 작가 알리기에로 보에티의 ‘Mappa’(80만 달러), 미국 팝 아티스트 웨인 티보의 ‘Candy Sticks’(7억원)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데미안 허스트 작품들과 서양화가 정상화(82)의 ‘무제’(1억7000만원) 등이 팔렸다. 매각 전 압수된 미술품에는 미국 조각가 클래스 올덴버그의 ‘담배꽁초 습작’(2억원),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1억원) 등이 포함됐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이선봉)는 1일 강제집행 면탈 혐의로 이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하고 홍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빼돌린 미술품 중 재산적 가치가 큰 107점에 대해서만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압수한 현금(5억9000만원)과 미술품 400여점을 동양사태 피해 회복에 사용하기로 하고 법원 파산부와 협의해 모두 가압류 조치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