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청이 2008년 해군 구조함 통영함 장착용 발전기와 엔진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는 경고가 내외부에서 수차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고음은 무시됐다. 그 중심에는 1일 구속된 오모 전 대령 등 장비 선정 과정을 담당했던 고급 장교들이 있었다. 이들은 당시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전기와 엔진을 관급으로 결정했다. 결국 오 전 대령이 전역 2개월 만에 간부로 취직한 S사가 납품을 했고, 우려대로 사고가 터졌다.
◇2008년 방사청 회의에서 무슨 일이=국민일보가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문서들을 보면 방사청은 2008년 12월 통영함에 탑재할 장비들을 어떤 방식으로 조달할지 결정하는 회의를 여러 차례 했다. 통영함은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하지만, 탑재 장비는 방사청이 직접 업체를 선정하거나(관급), 건조 업체가 선정하는(도급) 방식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오 전 대령이 위원장을 맡은 영관급 장교 ‘9인 회의’가 이를 결정했다.
비슷한 시기 해군본부와 국방기술품질원, 방사청 내부에서는 발전기와 엔진 등 5종은 관급이 아니라 도급으로 결정하는 게 맞는다는 보고서가 제출됐다. 근거는 명확했다. ‘방위사업관리규정’에 따르면 ‘함정 성능 보장상 책임소재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장비’였기 때문이다. 통영함 성능에 이상이 발견됐을 경우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대우조선해양이 납품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같은 달 29일 방사청 회의에서는 통영함에 장착할 발전기와 엔진 등을 관급으로 결정키로 의결했다. 의결 내용에는 내외부의 반대를 의식한 듯 ‘장비 계약 시 책임 한계를 명확히 할 수 있는 방안을 반영·노력한다’는 짧은 문구가 적혔다.
결국 방사청은 S사를 통영함 발전기 납품 업체로 선정했다. 우려대로 사고가 터졌다. 2012년 11월 발전기 부품에서 손상이 발생했고, 이를 교체하는 데 18일이나 소요됐다. 이 사고 때문에 결과적으로 통영함 건조 기간이 그만큼 더 늘어났다. 대우조선해양은 ‘관급장비 문제로 건조일수가 늘었으니 이를 감안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방사청에 보냈다.
군은 특정 장비를 관급으로 결정할 때 납품 업체까지 사실상 미리 낙점한다. 군의 한 관계자는 “이번 경우처럼 무기체계 관급 또는 도급 구매 시 특정 규격이나 사양을 통해 납품 회사를 미리 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오 전 대령, 전역 후 2개월 만에 화려한 변신=오 전 대령은 2010년 12월 방사청 상륙함사업팀장을 마지막으로 군에서 전역한다. 이후 불과 2개월 뒤인 2011년 2월 S사의 계열사에 부장으로 취업했다. 군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관급 결정’으로 납품 업체가 된 문제의 그 회사였다. 전역 2개월 만에 장비 선정을 담당하던 ‘갑’에서 장비 선정을 요청해야 하는 ‘을’로 변신한 것이다.
군피아 문제는 수차례 지적됐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현직에 있을 때 논란이 될 만한 특혜를 제공하고 전역 후에는 해당 업체에 취업하는 ‘전관예우’ 형식이다. 김광진 의원실에 따르면 오 전 대령이 취업한 S사 전체 계열사에만 지난해 9월 기준으로 30여명의 전직 군 고위 간부들이 취업한 것으로 집계됐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단독-통영함 발전기·엔진 납품 비리] 부품 선정 과정 ‘軍피아’ 개입…결국 사고로
입력 2014-10-02 0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