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사회적 독서… 그 든든함에 빠진 사람들

입력 2014-10-02 04:19 수정 2014-10-02 08:45
독서공동체 숭례문학당에서 함께 모여 책 읽고 토론해온 경험을 모아 ‘이젠, 함께 읽기다’를 출간한 4명의 공저자들. 왼쪽부터 신기수 김민영 조현행 윤석윤씨. 숭례문학당 제공
숭례문학당 회원들의 독서토론 모습.
지난 29일 월요일 오후 4시. 서울 숭례문 앞에 위치한 한 사무실에 30대 초반의 남녀 6명이 모였습니다. 같이 책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이 한 꼭지씩 써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 거랍니다. 벌써 3개월째 주 1회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의 주제는 ‘30대 여섯 청년들의 분투기’ 정도가 될 거라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새로운 일을 찾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여서 함께 책을 읽다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자고 작당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 또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오후 6시가 되니까 비좁은 사무실에 또 한 그룹이 도착합니다. 책을 한 권 낸 저자 그룹이랍니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해온 경험을 담아 ‘이젠, 함께읽기다’(북바이북)란 책을 4명 공동저술 형식으로 출판했습니다. 중소기업에서 은퇴한 윤석윤(58)씨,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다니는 주부 조현행(38)씨는 이 책으로 저자의 꿈을 이뤘습니다. 이들은 요즘 또 다른 책을 준비 중입니다. 이날 사무실에 모인 이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독서도 글쓰기도 혼자 하면 어렵지만 함께 하니까 재미있더라고.

마음 속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숭례문 앞에서 모여 함께 책 읽고 토론하고 글도 쓰는 모임, 숭례문학당은 2008년 12월 시작됐습니다. 전직 대기업 홍보팀 직원 신기수(46)씨와 전직 출판기자 김민영(39)씨, 두 사람이 10평 남짓한 사무실을 열고 개인 블로그에 사람들을 초대했어요. ‘같이 책 읽을 사람 모집’. 어디선가 10명이 찾아왔고, 첫 모임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김민영씨는 친구들과의 수다가 지겨워서 독서모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친구들과 만나면 미혼 시절에는 결혼 얘기를 하다가, 결혼하면 시어머니 욕을 해요. 요즘엔 주로 아이들 얘기죠. 들어주는 것도 지겹더라고요. 전 결혼도 안 했는데. 제 마음속 얘기를 누군가와 해보고 싶었어요.”

윤석윤씨는 “외로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남자들은 대부분 산에 가죠. 저는 책을 꾸준히 읽어온 편이에요. 그런데 읽어도 나누지 못하니까 좀 외로웠던 거 같아요. 뭔가를 나눌 수 있는 자리는 언제나 기대 이상의 만족을 줘요.”

프리랜서로 여행가이드 일을 한다는 윤서윤(31)씨는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고, 누군가와 내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설명합니다.



누구에게나 다 이야기가 있다

모여서 함께 책을 읽자고 시작한 숭례문학당은 어느새 6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독서모임은 서평토론모임, 공동저술모임, 영화토론모임, 어린이독서·글쓰기모임, 평전·자서전읽기모임, 월요조조모임, 칼럼스터디모임, 낭독모임 등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서평토론모임. 여기에는 매번 50명 안팎이 참가한다고 하는데, 참가자들은 정해진 책에 대한 서평을 써와야 한답니다.

베테랑 독서토론 진행자이자 유명 글쓰기 강사이기도 한 김민영씨는 “독서토론에서는 뮌헨대 문학박사가 고졸 직장인과 토론을 한다”면서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장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모임 참가자들 사이에 수준 차이가 너무 크면 토론이 진전되지 않거나 지루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김씨는 “그런 걱정은 말라”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리고 하나의 책을 읽더라도 사람마다 이야기를 발견하는 지점이 다 달라요. 그게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즐거움이죠.”



소통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끓고 있다

오랫동안 독서토론을 운영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숭례문학당이 만들어낸 독서토론 모델은 하나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체계화되어 각 지자체나 도서관, 학교, 기업, 군부대 등으로 퍼져나가는 중입니다. 학당에서 독서토론 강사를 양성하고, 이들이 전국으로 나가서 독서토론 프로그램을 전수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이수한 이들이 자기 조직이나 동네에서 독서모임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윤석윤씨는 학당에서 가장 잘나가는 강사 중 한 명입니다. 바쁠 때는 1주일에 하루도 빠짐없이 강의를 다닌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요즘 각 구청이나 도서관마다 독서모임이 유행처럼 늘고 있다고 합니다. 참가자들은 주부가 많지만 나이 든 남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정독도서관에서 ‘아빠독서토론’을 해보니까 수요일 밤에 하는데도 40, 50대 직장인들이 몰려오더라고요. 양천도서관에서도 ‘시니어독서모임’을 했는데 3분의 1이 남자였어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소통하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들끓고 있어요.”

숭례문학당 대표인 신기수씨는 독서모임의 유행과 관련해 두 가지 이유에 주목합니다. 하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와 본격적인 연금시대의 도래입니다.

“50, 60대는 지금까지 회사와 가족을 위해 살아왔어요. 책도 한 권 맘대로 못 읽고. 이들이 대거 은퇴하면서 이제부터는 나를 위한 삶을 살겠다, 나를 위한 책을 읽겠다고 하는 것이죠. 더구나 이들 상당수가 연금생활자들로 자식들 눈치 볼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원하는 삶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분출하는 것 같아요.”

다른 하나는 2030세대의 불안입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을 보면 20, 30대가 가장 많아요. 신분이 불안하고 자기 정체성이 약하다 보니 고민은 많은데 마땅히 얘기할 곳이 없는 거죠. 또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고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어 하죠. 독서모임이 그들에게 하나의 가능성, 하나의 대안으로 비치는 것 같아요.”



독서모임, 공동체를 위한 대화

숭례문학당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독서토론 맹신자들이 많습니다. 100권을 읽고 토론하면 인생이 바뀐다고 믿고, 어딜 가나 독서토론이 자기 삶을 변화시켰다고 ‘간증’을 한다고 합니다. 숭례문학당 회원들은 ‘기획회의’라는 출판잡지에 ‘책이 바꾼 삶-숭례문학당 이야기’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나온 윤석윤씨 간증입니다.

“지금까지 책은 혼자서 즐기는 취미생활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고 교감하는 좋은 도구로 진화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나누며, 독서토론에서 다른 사람들과 책에 대해, 아니 인생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글쓰기를 시작한 후 인생의 후반부는 외롭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있는 시간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함께하는 시간도 행복하게 되었다.”

윤석윤씨가 개인적 차원에서 독서모임의 의미를 고백했다면 김민영씨는 “독서모임은 시민의식을 키우는 학교이자 공동체를 위한 대화”라면서 사회적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보통의 모임이란 게 결국은 친목과 소비로 끝나요. 개인적으로 만나서 하는 얘기들은 푸념 아니면 하소연이죠. 공동체에 대한 고민, 삶의 진지한 측면에 대한 대화, 옳으냐 그르냐에 대한 토론이 없어요. 그 갈증을 독서모임이 채워주는 것 같아요.”

신기수 대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갑니다. 그는 “사회를 바꾸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찰과 학습”이라며 “한국사회의 미래는 독서공동체, 책 아지트에서 탄생할지도 모른다”고 책에 썼습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