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악의 대통령 10인’의 저자 네이슨 밀러는 20세기 이후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지미 카터를 지목했다. 남부 조지아 주지사 출신으로 1977년 대통령직에 오른 그의 4년 뒤 퇴임할 무렵 국민 지지도는 13%에 불과했다. 밀러는 카터를 최악의 대통령에 선정한 이유로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국정 현안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국가 대사를 결정하면서 무지한 조지아 마피아의 조언에 의존했다 △도덕적 우월성에 얽매여 독선적이었다는 점을 들었다.
지도자 중엔 숲을 보는 사람이 있고, 숲 속 나무를 보는 사람이 있는데, 카터는 그저 나뭇잎만 보는 사람(a leaf man)이란 악평을 들었다. 재임 중 이란 인질 사태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카터의 최대 실책으로 꼽힌다. 미국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외교와 국방에 실패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로 인해 카터는 재선에 실패했지만 퇴임 이후에는 가장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국제분쟁 해결과 민주주의 확산에 적극적인 활동을 해 왔다. 1994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남북 정상회담 제의를 이끌어낸 후 ‘한반도 위기 해결사’란 별칭을 얻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깊숙이 관여해 미국 행정부를 도왔으며, 국제 해비타트가 펼치는 ‘사랑의 집짓기’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이런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카터는 1일 90번째 생일을 맞았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3명의 억류 미국인 석방을 위한 방북 의사를 밝히는 등 아직도 의욕이 대단하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카터만큼은 아닐지라도 퇴임 후 왕성하게 활동한다. 청와대에서 나오면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칩거하다시피 하는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우리 헌법은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둘 수 있으며, 그 의장을 직전 대통령이 맡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회의체를 만들어서라도 전직 대통령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계속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었으면 좋겠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한마당-성기철] 90세 지미 카터
입력 2014-10-02 03:01 수정 2014-10-02 1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