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미경 (16) “해병대를 최강 부대로…” 독립법안 이끌어내

입력 2014-10-02 03:45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에서 질의하는 정미경 의원.

해병대를 알게 된 후 해병대를 작고 강한 부대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믿었다. 해병대 독립, 38년 이전으로 돌아가서 독자성과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갖게 해주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법안이 해병대독자성강화법안이었다. 국방부와 국방위원회의 대부분 의원이 반대했지만 나는 끈질기게 끌고 나갔다. 통일이 되면 중국과 일본이 우리가 해병대를 키우는 것에 대해 반대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때를 놓치면 영원히 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내가 검사 출신이라는 것도 가능하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법안심사를 직접 할 수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내가 생각해도 기적이었다. 이 기적에는 기도가 따르는 법. 나는 모르지만 그 누군가가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했을 것이다. 수많은 해병대원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을 것이다.

반대하는 육군 출신 의원들께는 “우리 아버지는 육군 소위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내 잃고 어린 남매를 조국에 두고 월남전에 참전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봐서라도 반대만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설득했다. 진심이 통했다. 나의 아버지는 졸업은 못했지만 공사 9기이기도 했고 육군 대위 출신이기 때문에 나는 공군가족이자 육군가족이다. 남자도 아닌 내가 해병대를 독립시킬 줄 누가 알았을까. 많은 해병대 예비역들이 내게 감사편지를 보내주었다. ‘죽는 그날까지 의원님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순간 조직을 달라는 내 기도가 떠올랐다. 나는 잊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그런 참 좋은 하나님께 나를 이끌어주신 분은 엄마다. 내 아이들까지 키우시는 엄마, 엄마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생모를 데려가시고 믿음의 엄마에게 날 맡긴 하나님의 뜻을 알기까지 참 많이 힘들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삶을 통해서 내게 가르치신 분은 하나님 그리고 엄마였다.

아버지는 죽음이 곁에 왔다고 느꼈을 때 이 땅에서 사랑했던 두 여자를 남기고 홀로 가는 것을 힘들어했다. 나에겐 엄마를 부탁한다며 “미경아, 너만 믿는다. 엄마는 천사다. 고생만 시키고…내 대신 네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에겐 “여보, 미경이랑 같이 살아. 그래서 미경이 아이들 좀 키워줘. 안 그러면 검사 안 한다고 할 거야”라고 부탁했다.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다. 우리가 어릴 때 도망가고 싶지 않았느냐고. 어떻게 그 가난과 아버지를 견뎠느냐고…. “네 눈동자 때문이었지. 네가 유독 ‘엄마 엄마’ 하면서 그 큰 눈을 반짝이며 따라다녔지.” 아, 나 때문이었구나. 아빠는 나 때문에 죽지 못했고, 엄마는 나 때문에 도망가지 못했다. 내가 두 사람을 함께 살도록 만든 희망이었구나. 엄마의 아빠, 즉 외할아버지는 충남 논산 성동에 작은 시골교회 장로님이었다. 큰 외삼촌은 침례교 이홍범 목사님이다. 작은 외삼촌은 서울 구로구 동광교회 이영범 목사님이다. 현재 친인척으로 목사님 숫자를 세면 20분이 넘는다고 한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바닷속으로 던져 놓으신 게다.

2008년 처음 국회의원 선거일 투표가 시작되기 전인 새벽 5시쯤, 작은 외삼촌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기도응답 받았다. 당선되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영광 올리자.’ 속으로 아니 투표도 하기 전인데…결과는 당선이었다. 외삼촌은 처음부터 발 벗고 선거운동을 해주셨다. 수원에 아는 목사님들을 찾아내서 내가 조카라며 도와달라고 부탁하셨다. 외삼촌 교회 성도님들도 마찬가지로 내가 조카라며 수원의 아는 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음으로 양으로 수많은 친인척이 만들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수많은 사람의 조카가 돼 있었다. 순간적으로 조직, 그것도 하나님의 조직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 기도를 잊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셨다.

정리=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