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욱(74)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은 북한의 변화에 큰 기대를 거는 듯했다. 그는 “최근에는 북한 정부가 시장을 폐쇄하려 해도 불가능할 정도”라며 “평양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주민들의 거의 대부분이 장마당에 의존해 생필품을 구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부위원장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스위스 유학 경험까지 거론하며 그의 개혁에 대한 결단을 희망했다. 그러면서 경색된 남북관계가 더 지속되면 분단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지난 29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5층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중국 전문가인 정 부위원장에게 25∼26일 중국 출장 얘기부터 꺼냈다.
-중국에 갔다 왔다고 들었다.
“한·중 오피니언 리더스 미팅을 했다. 통일연구원과 중국의 개혁개방논단이 주최했다. 중국 측이 한·미 관계에 굉장히 신경을 쓰더라. 지난 7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방한했을 때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한국 참여를 권유하지 않았나. 10월쯤 발족되는 걸로 아는데 우리 정부의 가입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또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국 배치를 중국은 미국의 ‘중국 견제용’으로 해석하는 듯했다. 북핵 고도화 단계가 더 진전되면 우리도 사드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우리가 합의한 것도 없는데 중국은 상당히 신경 쓰고 있다. 미국에 가면 우리가 중국에 쏠렸다 하고, 중국에 가면 미국에 너무 쏠려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중국에 설명을 잘 했다. 지금 단계에선 양국 간 결정적 장애가 될 정도는 아니다.”
-북한 얘기는 안 나왔나.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이 재개돼야 한다는 중국 입장이 다시 확인됐다. 중국 측 참석자 중에 군 출신 원로와 현역 장성이 있었는데 북핵에 강경했다. 북핵이 소형화·다종화·고도화되고 있으며 전술무기로 생각보다 빨리 진전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북한 내부에 상당한 변화가 있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북한이 변하는 게 진짜 맞나.
“2001년 북한이 시장 개혁을 추구한 적이 있다. 그런데 너무 빨리 그쪽으로 가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철회했다. 결국 시장 개혁은 실패했다. 2009년부터 시장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북한경제는 상당히 어려운데도 주민생활은 그리 나빠지지 않고 있는 이유다. 국가 영역 밖에서 살아갈 수 있는 소통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북한 정부가 강제로 폐쇄할 수 있는 힘은 갖고 있다. 하지만 북한 정부도 점차 시장과 계획경제가 공존하는 쪽으로 가야 할 거다.”
-그 과정에서 북한 내부의 갈등은 없을까.
“중국이 1978년 12월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15년 가까이 내부 노선 갈등이 있었다.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시장이냐, 계획이냐 등을 놓고 논쟁이 많았다. 시장경제와 계획경제가 싸울 때 공존을 선택하는 국가는 성공했다. 중국이 그렇다. 시장주의를 무력으로 탄압하는 국가들은 몰락하고 만다. 동유럽이 대표적이다.”
-북한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시장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조금씩 늘고 있다. 어느 시점에 가면 정부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 개혁은 이미 시작됐다고 본다. 김정은 제1비서는 스위스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다. 할아버지(김일성 주석)는 나라를 세웠고 아버지(김정일 국방위원장)는 핵을 만드는 선군·선핵 정치를 했다. 김정은은 조금 다른 걸 해야 하지 않겠나. 본격적으로 인민생활을 해결하는 게 김정은 시대의 역사적 소명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5년, 10년이 북한에 중요하다. 중국에서 북한을 잘 아는 사람들 만나면 김정은의 권력 장악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건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조금 지나면 공격적인 경제 개혁을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남북관계는 도무지 풀릴 기미가 없다.
“김정은 제1비서가 우리를 계속 시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전략적 인내를 갖고 남북관계를 풀어가야 한다. 사실 북한이 필요한 게 남한과의 경제협력 재개다. 금강산 관광도 재개해야겠고, 개성공단도 좀 더 확장해야 하고, 남북관계만 좋아지면 지금보다 몇 배 큰 개성공단이 가능해질 거다. 과거 남북대화에서 협상 테이블로 나오기 전에 물밑대화가 있었다. 우리가 얼마 줄 테니까 하자고 한 뒤 공식 대화가 이뤄져 왔지 않았나.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흥정을 통해 뭘 주고 타결하는 밀실 합의는 안 하겠다는 거다. 아마 북한도 좀 답답할 것이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북한도) 고위급 회담에 나오고 싶을 것이다. 북이 나와서 성의 있는 반응만 보인다면 우리도 5·24조치를 전향적으로 풀 생각도 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도 재개하게 될 테고…. 광복 70주년인 내년 8월까지 아무 변화 없는 상태로 간다면 남북 문제는 앞으로 대단히 어려워질 것이다.”
-북한 인권을 거론한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로 더 꼬이는 거 아닌가.
“유엔의 북한 인권보고서가 나왔고 국제사회가 인권 문제를 적극 제기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당연히 얘기할 수 있는 거다. 이 때문에 남북관계가 더 경색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인권이 금방 풀리는 문제가 아니지 않나. 관계없이 남북 간에 대화와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
-아직도 통일준비위원회가 뭐하는 곳이냐고 묻는다.
“우물가에 와서 밥을 찾는 성급한 요구라고 생각한다(웃음). 통일헌장과 통일 방안, 통일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다. 금년 말쯤 초안이 만들어질 것이다. 국민들의 통일 공감대 형성도 우리의 주요 임무다. 모아진 통일 청사진을 내년 광복절에 발표할 계획이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중국이 결국은 한반도 통일을 반대할 거라는 주장이 나왔다.
“그렇게 안 본다. 손익계산서 따져보더라도 한반도가 불안하고 분단이 지속되면 중국이 치르는 비용이 상당히 많다. 그에 비해 통일되면 그런 부담을 중국이 덜 수 있는 거 아닌가. 물론 중국은 미국과 동맹을 맺은 국가가 한반도 전체를 통치하고 그게 중국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통일은 언제쯤 될까.
“물리적 통일이 있고 실질적 통일이 있을 텐데, 물리적 통일은 예상하기 어렵다. 실질적 통일은 분단의 고통이 해소되는 의미로 앞으로 3년, 4년이 대단히 중요한 고비라고 생각한다. 이걸 그냥 넘기면 분단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종욱 부위원장은… 1997년 주중대사로 황장엽 한국행 성사시켜
최고의 ‘중국통’이라는 평가에 손색이 없었다.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은 29일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관계에서의 중국 역할은 물론 중국의 시각으로 본 한·미동맹, 미·중 관계까지, 80분간 ‘식견’을 드러냈다. 지난 7월 15일 부위원장을 맡은 지 채 석 달도 안 됐지만 박근혜정부의 통일정책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1940년 경남 거창 출신으로 부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예일대에서 중국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시절 중국정치사의 대표적 석학으로 꼽히는 조너던 스펜서 예일대 교수에게 배웠으며 귀국 후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를 지냈다.
김영삼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발탁돼 1994년 북핵 1차 위기를 한·미 공조를 통해 원만히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명한 1997년 2월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 망명 사건을 주중대사로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황씨가 머물던 베이징 대사관저는 북한 요원들이 출입구를 24시간 감시하고 있었고 중국 측 협조도 불투명한 긴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탕자쉬안 외교부 부부장을 상대로 끈질긴 협상을 벌여 황씨의 한국행을 성사시켰다.
서울대 국제대학원과 아주대, 동아대 등에서 중국 전문가를 양성했으며 인천대 중국학술원 원장(인천대 석좌교수)을 맡았다.
한민수 외교안보국제부장 mshan@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 한민수 외교안보국제부장이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다
입력 2014-10-03 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