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갔습니다. 대표팀은 벌써 해체됐죠.”
지난 27일 여자 비치발리볼 국가대표팀 관계자의 답변이다. 한국팀이 8강전에서 최강 중국팀에 패한 다음날이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의 얼굴은 당연히 어두웠다. 패배는 팀 해체를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비치발리볼 국가대표팀 해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형 국제대회 때마다 배구 출신 선수들을 호출해 대표팀을 급조해 왔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때도 호출됐던 한 선수는 이번엔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2주 전 소집됐던 4년 전과 달리 이번엔 무려 두 달 전에 호출받았다. 교통비에다 숙식비까지 더해졌다. 물론 수당이나 월급은 당초 꿈도 꾸지 않았다. 2개월짜리 국가대표 생활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은 기약 없는 미래일 뿐이다.
'전종목 출전' 명분에 이용되는 일회용 선수
여자 크리켓 1호 국가대표팀. ‘아름다운 첫 도전’이라며 언론에 대서특필되기까지 했다. 40대 주부에서부터 전직 소프트볼 선수, 합기도 사범, 체대 낙방생, 배드민턴 강사 등 다양한 이력의 15명이 모여 6개월 동안 피나는 훈련을 했다. 여러 운동장을 메뚜기처럼 옮겨다니며 훈련했다. ‘지금 경기장을 비워줘야 한다’고 감독이 말하면 훈련 종료였다.
그리고 인천아시안게임. 지난 20일 조별리그 중국과의 예선 첫 경기에서 49대 50으로 패했다. 이틀 뒤 홍콩전 57대 92 패배로 크리켓 1호 국가대표팀의 도전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그들은 다음날 선수촌을 떠났다. 언제 다시 모인다는 언질도 없이 6개월짜리 국가대표 생활을 끝마쳤다.
지난 26일 인천 남동체육관. 트램펄린 1호 국가대표는 결선에서 8명 중 꼴찌를 했다. 2명을 제치고 결선에 오른 것만도 기적이었다. 국가대표팀이 꾸려진 것은 지난 2월이다. 국내 전체 선수 5명 중 2명이 선발됐다. 지원 경비가 없다 보니 7월에야 훈련에 돌입했다. 훈련장을 구하지 못해 경북 문경의 국군체육부대에서 훈련했다. 기술과 규칙을 몰라 인터넷과 외국 서적을 서핑했다. 모든 경비는 자체 부담이었다. 역시 경기 다음날인 지난 27일 해체됐다. 실제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기간은 2개월에 불과했다. 그나마 돌아갈 학교가 있어 다행이었다. 이들 외에도 단지 아시안게임을 위해 소집된 선수들은 곳곳에 숨어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이제는 차분히 되짚어보자. 왜 국가대표팀들이 급조됐는지를 말이다. 대한체육회와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는 보도자료를 낼 때마다 ‘36개 전 종목 출전’과 ‘역대 최대 규모의 선수단’이라는 수식어를 자랑했다. 이들 단어를 채우기 위해 ‘급조’ 국가대표팀들이 필요하지 않았는지 되묻고 싶다. ‘아름다운 도전’ ‘1호 국가대표’라는 점을 이용해 인천아시안게임을 홍보하는 부대효과를 노리지 않았는지 알고 싶다. 올해 해당 체육 단체들의 예산에는 1호 국가대표팀 지원 항목 자체가 없기에 인천아시안게임용 국가대표팀이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인기종목 아니어도 계속 운동하는 게 꿈
존속 여부가 불투명하다 보니 대기업의 지원이 있을 리 만무하다. 같은 비인기 종목이긴 하지만 대형 국제대회마다 메달을 따내는 펜싱과 양궁, 승마 등에 대기업 회장들이 몰려드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지상파 방송사들도 생중계를 외면했다. 인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해체된 ‘급조’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바라는 것은 딱 하나였다. 계속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만 조성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제 아시안게임 등 대형 국제대회를 앞두고 일회성 국가대표팀을 급조하는 방식을 바꿔야 할 때다. 홍보용 국가대표팀 운영은 지양해야 한다. 아무리 비인기 종목이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대표팀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2개월짜리 국가대표들의 조그마한 꿈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2년 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국가대표로 뛰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김영석 체육부장 yskim@kmib.co.kr
[데스크시각-김영석] 2개월짜리 국가대표
입력 2014-10-02 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