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양동주] 시민들이 만드는 안전한 사회

입력 2014-10-02 03:04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위험과 재난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는 ‘위험사회’ 이론을 주장해 주목을 받았던 독일의 울리히 벡 뮌헨대 교수가 지난 7월 한국을 두 번째로 방문했다. 그는 “유럽 국가들은 근대화를 완성하는 데 150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불과 50년 만에 근대화를 이뤄냈다. 그러나 빠른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위험에 노출됐다”고 한국의 안전문제와 관련된 의견을 제시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 주변에는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수많은 위험요인이 잠재, 또는 노출돼 있고 크고 작은 사고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나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는 위험을 위험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불감증이 생활 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고와 동일 또는 유사한 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되고 있으나 사전에 위험요인을 찾아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근원적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고가 나면 대부분 예고된 인재였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철저한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강조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너무 쉽게 망각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안전사고 사망자 비율이 가장 높다. OECD 평균보다도 배 이상 높고 매년 3만여명이 안전사고로 숨지고 있다. 또한 산재 사망자 발생비율 1위,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발생비율 1위라는 통계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이런 통계를 접할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우리가 10위권 경제 대국임을 주장해도 세계인들 눈에 비치는 한국은 안전후진국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안전은 정부 주도로 시행돼 왔다. 그러나 정부 역할에도 한계점이 드러나고 있으며 이는 정부의 역할만으로 안전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임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 이제는 시민들이 스스로 나서야 할 때다. 안전에 대한 시민참여는 우리가 직면한 시대적 요청이며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위험감시 활동이 전개된다면 이는 지역사회 안전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 최근 지역사회 안전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자율적 움직임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올 들어 안전행정부 후원으로 실시하는 사회안전전문가 양성교육(16시간/2일, 집체교육)에 자율적으로 참여하려는 시민들이 학계 및 연구소, 언론계, 종교계, 체육계, 장애인 단체, 어머니회, 여행사, 보험사, 일반기업 등 각 계층에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위험을 보는 눈’을 갖도록 하고, 주변에 잠재해 있는 인적·물적 위험요인을 발견 및 평가하는 기본적인 지식과 소양을 갖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교육을 수료한 사람들은 향후 안행부에서 인정하는 시민안전감시단으로 위촉돼 잠재된 위험요인을 미리 찾아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함으로써 안전을 리드하는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또한 시민안전감시단이 찾아낸 위험요인들은 전문가의 검증 과정을 거치게 되며 확인된 위험에 대해서는 사회에 경고하고, 위험관리 주체에 그 위험의 제거 또는 개선을 권고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은 시민과 시민단체가 협력적으로 추진하는 시민운동으로 행해진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위험불감증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시민들의 자율적인 움직임은 우리 사회에 안전문화를 생활 속의 풀뿌리문화로 자리잡게 하는 작은 불씨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누가복음 9장 25절의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는 말씀에 안전을 뜻하는 의미도 포함돼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본다. 안전문제에 시행착오를 통한 교훈은 있을 수 없다.

양동주 한국안전진흥협회 회장